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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고통속에 놓아두기 이성부 시인의 산사랑 이야기 - 산길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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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영 [vkddms] 쪽지 캡슐

2010-12-07 ㅣ No.10757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여러가지의 산행목적이 있다.가령 심폐기능의 강화 등 건강을 위해서라든지, 일행들과의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라든지, 자연 속에 파묻히므로써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라든지... 또 어떤 외국의 저명한 등산가는 ' 산이 거기 있으니까' 그냥 산에 오른다는 다분히 시적인 말을 한 적도 있다. 나로서는 자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편이 아름답게 들린다.

 자기를 극복한다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일이다. 개인적인 이기주의나 편안함, 안일함 따위를 물리치고 스스로를 고통속에 놓아두는 일이기도 하다. 산행은 그러므로 ' 고통을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된다. 고통을 즐긴다? 어불성설같이 여겨지지만 적지않은 산꾼들은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터득하고 있을터이다. 고통을 참고 견디는 즐거움이야말로 최상의 즐거움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스스로를 고통속에 놓아두기 위한 산행은, 자신을 시험대에 올려놓는 산행이기도 하다. 자신은 이 어려움을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처하는가. 자신은 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것인가. 자신의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본다. 암벽에 붙어 혼신을 힘을 다하는 육체, 허기와 탈진으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육체, 때로는 두려움과 망설임 사이에서 떨고있는 육체를 자신의 영혼이 몸 밖에서 내려다본다. 마치 시험관 속의 미생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영혼은 육체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전혀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만나게 된다. 상식을 뛰어넘는, 어떤 불가사의를 보게되고,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거룩한 몸을 창조하게 된다. 이것은 분명 몸 떨리는 즐거움이다. 이단계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많은 체력 소모가 필요하다. 때로는끝없는 추위에 떨어야 하고, 때로는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가야 한다. 끊임없는 탐구정신, 이를테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심과 이르지 못했던 곳에 이르고 싶은 모험심이 또한 분출해야 한다. 반복되는 실패와 고통이 따르기 마련인 이 과정을 모두 거쳐야만이 어느덧 정상은 가까이에 와 있다.

 봄을 기다리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겨울의 그 눈보라와 어둠과 아픔의 나날을 견디어 왔던가. 그 고통은 마침내 우리로 하여금 소리마저 굳어 버릴 만큼,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을 만큼, 기진맥진한 상태가 아니었던가. 바로 그 순간에 봄이 오지 않았던가.

 봄은 그러므로 산의 정상이다. 긴 기다림과 추위를 견디어 내었기에 봄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되풀이되는 어려움과 극한적 상황을 극복해 냄으로써 오는 눈부신 행복은 어떤 다른 행복과도 바꿀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고통의 질이 심각하고 그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음에 오는 즐거움의 질량 또한 크기 마련인 때문이다.

 

 산에 오르는 일은 반드시 사람들의 한평생과도 닮았다는 생각이다. 힘들게 오르는 어려움이 있느가 하면 편안하게 내려오는 길도 있다. 산의 능선길은 바로 이와 같은 오르내림의 끝없는 반복이다. 사람의 한평생도 이처럼 상승과 하강의 되풀이와 다르지 않다.새옹지마의 고사를 새삼 떠올리며 나는 또 훌쩍 산으로 떠나야겠다.

 

 

                     이성부 시인의 산 사랑이야기   -  산 길 -  중에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글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 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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