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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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영 [vkddms] 쪽지 캡슐

2010-12-15 ㅣ No.10759

마태오 4,18-22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가시다가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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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그분의 제자가 된다는 것


소개된 이 성서 구절은 사실 오랜 교회의 역사 안에서,

 

사제성소에 관한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소재로서 줄 곧 사용되어 왔던 구절이다.


네 명의 사도를 부르시는 예수님, 그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 응답을 위한 모든 것의 포기.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사제성소에 관한 설명으로 이처럼 좋은 구절은 없다.


오늘의 복음구절을 가지고도 다각도로 조명이 가능하고 묵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

 

오늘은 사제성소에 국한되는 좁은 의미의 묵상보다는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우리 모든 신자들,

 

즉 모든 제자들에 대한 부르심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까지 자신을 통해서 하느님을 모르다가 하느님을 알게 된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는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사랑의 나눔 속에 있는 관계들 안에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혹시 당신의 남편, 당신의 아내, 당신의 형제자매 중에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이 있다면 참 슬픈 일이다.

 

구체적인 선교적 자세는 취하지 못했다하더라도,

 

최소한 그들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 중에 기억을 한 적이라도 있는가?

 

아니 그들이 하느님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라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만약 불행히도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긍정적이지 못한 답변밖에 줄 수 없는 이들이라면,

 

그러면서도 자신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착각이고,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얼마 전 올린 글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라자로를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던 부자가 저지른 죄는

 

다름 아닌 무관심이라는 죄가 아니었던가?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성격상 남들에게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혹은 “저는 여건이 되지를 않습니다.

 

나중에 여건이 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답변도 이런 비슷한 내용이 아닐까?

 

성격을 이야기하지말자.

 

예수님의 선택하신 열 두 제자 하나같이 다른 성격의 소유자들이었고, 비슷한 구석은 아예 없었던 인물들이었다.

 

구약의 예레미아 예언자 같은 이는 워낙 수줍음을 잘 타고 조용한 전형적인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가족들에게도 버림받을 정도의 쓰디쓴 하느님의 전언을 전해야만 했던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건만 우리 모두는 너무 소극적이지 않은지 반성해볼 일이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절대 사치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모두 사람을 낚아야하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선교의 모습은 어떤 것이 가능할까?

 

일차적으로 마음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이차적으로는 기도하는 것이다.

 

마음에 떠오르는 이들부터 시작해서 확실한 지향을 가지고 그 대상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행동이 따라야 한다.

 

여기서 행동이라 하면 개신교의 형제들이 하는 것과 같이, 전철에서나 광장 한복판에서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라고 떠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러한 역할을 가지고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 취향은 아닌 것 같다. 행동에는 향기가 풍겨야한다.

 

그리스도를 전하려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야한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제대로 복음화되면 된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려고 하는 이에게, 기도하는 모습이 생활화된 이에게,

 

무엇보다도 그분처럼 세상에 대해 연민의 정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절로 풍기기 마련이다.

 

결국 복음적으로 잘 살아야한다.


야고보의 편지 5장 19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을 묵상해보면서 마무리를 지을까 한다.


“19.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갈 때에 누가 그를 바른 길로

     

      돌아서게 한다고 합시다.

 

 20. 그러면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한 그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용서받게 해 줄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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