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대림 제2주일 (다해) 루카 3,1-6; 1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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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5-12-06 ㅣ No.3009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대림 제2주일 (다해) 루카 3,1-6; 15/12/06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 (Misericordiae Vultus)1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지난 6월 14일 연중 제11주일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자비의 희년 발표’를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은 ‘자비의 특별 희년’이 시작하는 내일 모레 12월 8일을 맞아,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칙서 ‘자비의 얼굴’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 칙서는 “하느님의 종들의 종 로마 주교 프란치스코가 이 편지를 읽는 모든 이에게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빕니다.” 라는 말로 시작하여, 총 25개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이십니다. 아버지의 자비는 나자렛 예수님 안에서 생생하게 드러나 그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자비가 풍성하신”(에페 2,4) 아버지께서는 모세에게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한 하느님”(탈출 34,6 참조)이라고 당신 이름을 알려 주시고 역사를 통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의 거룩하신 본성을 끊임없이 보여 주십니다. “때가 차자”(갈라 4,4) 아버지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에게 완전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뵌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입니다(요한 14,9 참조). 나자렛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동, 당신의 온 인격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십니다.


 


2. 우리는 언제나 자비의 신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신비는 기쁨과 고요와 평화의 샘입니다. 여기에 우리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자비는 인생길에서 만나는 형제자매를 진실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근본 법칙입니다. 자비는 하느님과 사람을 이어 주는 길이 되어 우리가 죄인임에도 영원히 사랑받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해 줍니다.


 


3. 이 성년은 2015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거룩하고 흠 없는 마리아를 선택하시어 인간 구원자의 어머니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에페 1,4 참조). 주님의 자비는 언제나 어떠한 죄보다도 더 크므로 그 누구도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습니다.


 


대림 제3주일에 로마 주교좌 대성당, 곧 성 요한 라테라노 교황 대성전의 성문이 열릴 것입니다. 이어서 모든 개별 교회는 자비의 문을 열고, 이 성년을 특별한 은총의 때와 영적 쇄신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이 되는 이날 성문을 열 것입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안온한 도성처럼 감싸 주던 성벽은 무너져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임무는 열정과 확신으로 신앙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6세 복자는 공의회를 마치면서 말하였습니다. “우리 공의회의 신앙은 사랑이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옛 이야기가 공의회의 모범이자 규범이었습니다. 모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 온갖 나약함을 지닌 인간, 갖가지 요구를 지닌 인간에게 봉사하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의 발걸음을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에 협력하도록 이끄시는 성령께서 하느님의 백성을 일으켜 세우시고 이끌어 주시어 그들이 자비의 얼굴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5. 희년은 2016년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끝날 것입니다. 그날 특별한 은총의 시간을 주신 성삼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교회의 삶과 모든 인간과 무한한 우주를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맡겨 드리며 미래의 풍요로운 역사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자비를 아침 이슬처럼 내려 주시기를 빌 것입니다.


 


6.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하느님의 고유한 본질입니다. 바로 그 자비 안에서 하느님의 전능이 드러납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분노에 더디시고 자비로우신 분이라는 말로 자주 하느님의 본성이 묘사됩니다. 주 하느님은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낫게 하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로 관을 씌워 주시는 분”(시편 103[102],3-4) 이시며, “억눌린 이들에게 올바른 일을 하시며 굶주린 이들에게 빵을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께서는 붙잡힌 이들을 풀어 주시고 눈먼 이들의 눈을 열어 주시며 꺾인 이들을 일으켜 세우신다. 주님께서는 의인들을 사랑하시고 이방인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신다. 그러나 악인들의 길은 꺾어 버리신다”(시편 146[145],7-9). 그리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신다. ……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일으키시고 악인들을 땅바닥까지 낮추신다”(시편 147[146-147],3.6).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비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실재입니다. 온유한 배려와 너그러운 용서가 넘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솟구치는 사랑입니다.


 


7.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이는 하느님의 계시 역사를 노래하는 시편 136편의 모든 절마다 반복되는 후렴구입니다. 자비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로 변화시켜 줍니다. 이는 시공의 역사 안에서만이 아니라 영원토록, 인간은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눈길 아래 있으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하시기 전에 이 자비의 시편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마태 26,30) 올리브 산으로 가시면서,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당신과 당신의 파스카 희생에 대한 영원한 기념제로 제정하시면서, 자비의 빛이 상징적으로 이 최고의 계시 행위를 비추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 자비의 지평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완성될 위대한 사랑의 신비를 의식하시며 수난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8.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16). 그분께서는 오직 사랑, 자신을 거저 내어 주는 사랑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죄인이나 가난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 병자들, 고통 받는 이들에게 행하신 모든 기적은 자비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오는 군중을 보시자 그들이 지도자 없이 길을 잃고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것을 알아채시고 무척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마태 9,36 참조). 그분께서는 가엾게 여기시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데려온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마태 14,14 참조), 빵 몇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수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마태 15,37 참조). 이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자비였습니다. 그 자비로 당신께서 만난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절실한 바람을 채워 주셨습니다. 외아들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나인의 과부를 만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울부짖는 어머니의 커다란 고통을 보시고 무척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 아들을 죽음에서 다시 일으켜 어머니에게 돌려주셨습니다(루카 7,15 참조). 게라사인 지방에서 마귀 들렸던 사람을 고쳐 주시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마르 5,19). 마태오를 부르신 것도 자비의 맥락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관 앞을 지나시다가 마태오를 바라보셨습니다.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의 눈길이었습니다.


 


대림 제2주일, 자비로이 우리를 부르시고 회개의 길로 이끄시어, 주님을 맞이하도록 준비시켜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루카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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