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성주간 월요일 ’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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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3-10 ㅣ No.4595

성주간 월요일 ’21/03/29

 

우리 모두는 지난 날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실수였든 잘못이었든, 의무였든 애덕이었든, 양보였든 배려였든지, 드러내고 자랑할만하지 않은 그림자들이 있습니다. 각자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자신의 고의로나 작위나 부작위로 그리고 의식으로나 무의식으로 저지른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과거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언뜻 언뜻 그 기억의 부분들이 떠올라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합니다. 그것들이 크고 작든 간에 드러나지 않고 용서받았으면 좋겠다.’ ‘드러나더라도 심하게 벌을 받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졸이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한 우리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아시는 주 하느님께서는 오늘 독서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이사 42,1-4)

 

왜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실까?

왜 주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한 점과 잘못을 일일이 나열하고 탓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실까?

 

물론 이 위로는 우리가 잘못한 사실을 가려주고, 우리 때문에 알게 모르게 직간접적으로 피해입은 이들의 상처를 외면하거나 보상과 배상을 면제시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세상에 공정을 세울 분이십니다. 그러시면서도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물론 나만이 아니라 나에게 피해를 입은 이 그리고 나에게 피해를 입힌 이들 모두를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나 공정을 펼치는 과정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잘못을 드러내놓고 외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시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망신을 주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잘못하여 넘어지고 부서진 우리 마음을 자비로이 헤아려주시려고,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며 용서해주십니다. 그러시면서도 우리의 양심이 흩어지지 않고 느슨해지지 않도록 일깨우시면서, 우리가 회개하여 배상과 보상을 통해 되돌이키고 다시 새 삶을 살 때까지 기다려주시며, 세상에 공정을 세우십니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6-7)

 

주님,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어 주님을 향한 새로운 마음을 넣어주시고, 우리가 잘못과 부족하고 미진하였던 순간들을 깨닫고 주님 사랑 안에서 회개하여 다 되돌이킬 수 있도록 해 주소서. 비록 지금 이 현세에서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면 주님을 따른 봉사와 희생, 그리고 희사와 자선으로 갈음하게 해 주시고, 이 땅에서 가능한한 다 되갚고 주님께 돌아갈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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