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나해) 요한 20,19-31; ’2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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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4-07 ㅣ No.4620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나해) 요한 20,19-31; ’21/04/11

  

 

 

 

 

 

만일 우리가 오늘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라고 하면 누가 쉽사리 믿겠습니까? 어쩌면 성당에 갑시다.”라고 말로만 제안할 때 벌어지는 현상과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감각기관인 오관과 그에 따라 반응하는 인식기관인 두뇌가 긍정적으로 수긍하지 않는 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감각과 인식은 삼차원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감각적으로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고 냄새가 나고 맛을 알 수 있는 오관과 그 감각을 통한 인식 세계의 경험과 사유로 존재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감각기관인 오관으로 인식할 수 없는 대상과 그 대상의 활동은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차원의 차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신비의 존재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해할 수 없기에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인간적인 감각기관과 인식기관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에 믿지 못한다면,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지난 한 주간 부활 8부의 미사 복음에서 우리가 읽었던 예수님 발현기사들을 살펴봅시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마태오와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토요일인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새벽,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주간 첫날 새벽, 즉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셔서 주님의 날이라고 하는 주일 새벽에 부활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맨 처음에 여인들과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십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안식을 맞이하기 위하여 아무런 준비도 못 하고 제대로 장사를 치르지 못하여 안타까워하던 여인들이 그나마 예수님 시신에 향유라도 발라 드리려고 무덤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시신은 없어지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치 정원지기처럼 나타나셔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확신을 심어 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여인들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알리라고 이르십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립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인들의 부질없는 말이라고 치부하고 믿지 못했습니다.

 

수요일, 루카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심으로써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중 두 명이 엠마오라는 시골로 가는 중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이 되어 예수님을 자신들이 묶는 집으로 모십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빵을 떼어 주시는 예수님의 행동양식에서,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성령께서 눈을 열어 주심으로써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 24,30-31)

 

목요일, 엠마오로 떠났던 제자들이 주님을 뵙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동료 제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루카 24,34-35) 유다인들에게 잡혀갈까 봐 두려워서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 부활에 대한 소식을 나누며, 그 흥분되고 복잡한 심정에 빠진 제자들 한 가운데로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제자들은 유령으로 착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제자들이 내어주는 먹을 것도 먹으시면서, 유령이 아니라 새로운 몸으로 되살아난 예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금요일, 예수님의 죽음을 뒤로하고 갈릴래아 호숫가로 낙향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돌아오는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요한 21,6) 라고 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기적을 베푸시며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십니다. 제자들을 처음 부르실 때 베푸신 그 기적을 다시 한번 재현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생전의 그 모습 그대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이렇게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한 여인들이나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나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무서워 떨던 제자들이나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기적을 체험한 제자들은 비록 자신들의 감각기관으로는 예수님을 대상으로 인식하고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의 영에 새겨진 예수님과의 추억과 활동 방식과 존재 방식의 이미지에 대한 기억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고 확신하여 믿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향해 마리아야!”(요한 20,13) 라고 부르시는 언어형식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18) 라고 제자들에게 고백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시는 행동양식에서 생전의 예수님이심을 알아봅니다.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자신들이 처음 부르심을 받았던 그 때의 물고기 잡이 기적의 재현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인간 세상에서 인간들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었던 일이 이루어지는 현상을 목격함으로써 자신들을 휘감았던 예수님에 대한 강력한 체험과 그로 인하여 예수님과 맺은 관계로 예수님을 믿게 되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과 맺었던 그 깊은 기억 속에 아로새겨져 있던 그 모습을 재현하심으로써, 부활하신 예수님이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했던 예수님이심을 일깨워 주시고 믿게 해 주십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 중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지만 자신에게는 나타나지 않으셨음을 섭섭하고 불편한 감정에 쌓여 볼멘 목소리로 불평합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들어오던 말이 떠오릅니다. “성당에 간다고 돈이 생기냐 밥이 생기냐?” 보이지 않기에 인식의 대상도 되지 않고, 그러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성당에 주 하느님을 알고 싶어 찾아오시는 분들의 체험을 들을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차는 다 부서졌는데 저는 전혀 다치지 않았어요.” “높은 데서 떨어졌는데 누군가가 나를 받아주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무사히 살아남았어요.” “산에 오르다가 실족하여 뒤로 넘어갈 뻔했는데 누군가가 떠받쳐주는 기분이 들면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았어요.” 예수님께서는 갈증에 휩싸여 있는 토마스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 토마스는 그제야 자신 앞에 재현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8)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주님과의 강력한 체험을 심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때 그 체험이 예수님께서 내 인생 속에 이루신 기적 같은 체험이라고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님과의 강력하거나 약하거나 끊어지지 않고 꾸준히 계속되는 연결고리가 될 만한 체험을 심어 주셨습니다. 우리 기억의 저편 속에 숨겨져 있는 그 체험을 발굴하고 되새겨 봅시다. 성령께서도 우리의 기억을 여는 데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영을 열고 그 체험이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 살펴봅시다.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모습을 바탕으로 새로워지고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과거 그때 그 순간에 각인된, 같은 느낌과 같은 체험을 불러일으켜 주실 수 있습니다. 특별한 체험이 없다고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오늘까지 이렇게 매주 매일 미사에 참례하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가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마치 습관처럼 주님 앞에 나아오는 주님과의 연결고리가 우리에게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님께서 오늘 주 예수님을 찾아 성당에 모인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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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일 꽃꽂이,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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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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