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사순 제3주일(나해) 요한 2,13/03/07 성 요셉의 해 교황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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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2-19 ㅣ No.4556

사순 제3주일(나해) 요한 2,13-25; ’20/03/07

성 요셉의 해 교황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I

 

 

 

 

 

우리는 지금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탄생 200주년 희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세계교회는 올 128일까지 1년을 예수님을 기르신 성 요셉의 해로 지내고 있습니다. 성 요셉 성월인 3월 한 달 동안, 교황 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Patris corde)를 살펴봅시다. 이 교서는 현대 세계에 성 요셉을 통해 아버지성과 가정의 수호자인 가장의 모습을 잘 제시해 줍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는 네 가지 복음서 모두에서 요셉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예수님을 요셉이 얼마나 사랑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요셉이 보잘것없는 목수(마태 13,55 참조)였고 마리아와 약혼하였습니다(마태 1,18, 루카 1,27 참조). 요셉은 의로운 사람”(마태 1,19)이었고, 율법(루카 2,22.27.39 참조)으로 그리고 네 가지 꿈(마태 1,20; 2,13.19.22 참조)으로 그에게 계시가 된 하느님의 뜻을 언제나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자렛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고 힘든 여정 후에, 요셉은 메시아가 외양간에서 태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갈 다른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루카 2,7 참조). 요셉은 목자들(루카 2,8-20 참조)과 동방 박사들(마태 2,1-12 참조)의 경배를 목격하였습니다. 이들은 각각 이스라엘과 이교도들을 대표합니다.

 

요셉은 용기 내어 예수님의 법률적 아버지가 되어, 천사가 그에게 알려준 대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1)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40일이 지나, 요셉과 마리아는 성전에서 주님께 그 아이를 봉헌하였고, 예수님과 그의 어머니에 관한 시메온의 예언을 듣고 놀랐습니다(루카 2,22-35 참조). 요셉은 헤로데로부터 예수님을 보호하고자 이집트에서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마태 2,13-18 참조). 본향으로 돌아온 후 갈릴래아의 작고 알려지지 않은 고을인 나자렛에서 숨어 생활하였습니다. 나자렛은, 요셉의 본향인 베들레헴에서 그리고 예루살렘과 성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나자렛에 관해서 예언자가 나오지 않았고”(요한 7,52 참조), 사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요한 1,46 참조)고 말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순례를 하는 중에 요셉과 마리아는 열두 살 된 예수님을 잃어버려 애타게 찾아다녔고,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예수님을 찾아내었습니다(루카 2,41-50 참조).

 

복자 비오 9세께서는 1870128일 요셉을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하셨고, 가경자 비오 12세께서는 노동자들의 수호자,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구세주의 보호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앞둔 이의 수호자인 요셉 성인에게 간구합니다. 복자 비오 9세 교황님의 선포 150주년을 맞아, 저는 우리를 강타한 전염병 확산 위기 속에서 우리 삶은 다른 평범한 이들과 함께 엮여 있고 그들에게 도움받는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의사, 간호사, 상점 주인, 상점에서 일하는 이들, 환경미화원, 간병인, 운수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치안 유지에 종사하는 이들, 봉사자, 사제, 남녀 수도자와 다른 많은 이들입니다. 이들은 그 누구도 혼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목받지 않고 날마다 신중하게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살아가는 요셉 안에서, 우리 저마다는 곤경에 처해 있을 때의 중재자, 지원자, 안내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셉 성인은 숨겨져 있거나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이 구원 역사에서 비할 데가 없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그들의 공로에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1. 사랑받는 아버지

요셉 성인의 위대함은 그가 마리아의 배필이었고 예수님의 아버지였다는 데에 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이 구원의 모든 계획을 위하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요셉은 자신을 내어 맡기었습니다.

 

바오로 6세 성인은, 요셉이 강생의 신비와 구속의 사명을 위하여 자기 삶을 희생하면서부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요셉은 성가정에 대한 자기의 법적 권한을 활용하며, 자기의 삶과 노동을 통하여 가족들을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였습니다. 요셉은 가정을 사랑하라는 인간적 성소가 자기 자신, 자신의 마음과 모든 능력을 봉헌하는 초인간적 봉헌, 곧 그의 가정에서 성장하는 메시아를 위하여 기꺼이 내어주는 사랑이 되게 하였습니다.”

 

요셉 성인은, 구원 역사 안에서 자신의 역할 덕분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나 사랑받는 아버지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요셉 성인을 변호인이자 중재자로 선택하였고, 그에게 늘 의탁하며 그에게 청한 모든 은총을 받았습니다. 모든 기도서에서는 요셉 성인에게 바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과, 매년 3월에는 특별히 요셉 성인에게 기도를 바칩니다.

 

요셉 성인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요셉에게 가시오.”(Ite ad Ioseph)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이집트에 기근이 들자 이집트인들이 파라오에게 빵을 달라고 할 때, 파라오는 백성들의 요청에 이렇게 답합니다. “요셉에게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창세 41,55) 파라오가 말한 요셉은, 형들의 질투심에 노예로 팔려갔고(창세 37,11-28 참조), 성경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후에 이집트의 재상이 된(창세 41,41-44 참조) 바로 야곱의 아들인 요셉입니다.

 

요셉은, 나탄 예언자의 약속대로(2사무 7장 참조) 그 후손 가운데 예수님이 나신 다윗의 후손(마태 1,16-20 참조)으로, 그리고 마리아의 배필로 신약과 구약을 연결해 주는 요체입니다.

 

2. 온유하고 다정한 아버지

요셉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가는”(루카 2,52) 예수님의 모습을 날마다 지켜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하신 것처럼 요셉은 예수님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팔로 안아 주었습니다. 그는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는 아버지였습니다.”(호세 11,3-4 참조) 예수님께서는 요셉에게서 하느님의 온유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가엾이 여기듯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신다.”[시편 103(102),13] 요셉이 시편 기도를 바칠 때,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온유한 사랑의 하느님이시라는 말이 회당에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습니다. 온유한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모두에게 좋으신 분입니다. “그 자비 당신의 모든 조물 위에 미치네.”[시편 145(144),9]

 

구원 역사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 4,18) 우리의 나약함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께서 우리의 훌륭하고 우수한 부분을 통하여 일하신다고 생각하지만, 하느님 계획의 대부분은 우리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실현됩니다. 바오로 성인은 다음과 말씀하십니다.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7-9)

 

온유함으로 나약함을 받아들이십시오. 악마는 나약함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지만, 성령께서는 온유함으로 나약함을 드러나게 해줍니다. 온유함은 나약함을 어루만져 줍니다. 다른 이를 지적하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나약함, 약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표징입니다. 온유함만이 우리가 고발하는 자의 덫(묵시 12,10 참조)을 피하게 합니다. 화해의 성사는 하느님의 진리와 온유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기에, 화해의 성사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악마도 진리를 말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악마가 그렇게 하는 것은 단죄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진리는 우리를 단죄하지 않고, 오히려 환대하고 감싸 안아 주며 격려해 주고 용서해줍니다.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고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루카 15,24)라고 말하는 아버지처럼, 그 진리는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만나고 우리의 존엄성을 찾아주며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우리를 위한 잔치를 마련해 줍니다.

 

하느님의 뜻, 그분의 역사와 계획은 요셉의 두려움 안에서도 작용하였습니다. 요셉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두려움, 약점, 나약함 안에서도 일하신다는 것을 믿게 해줍니다. 요셉은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님께 우리의 길을 이끄시도록 맡겨 드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완전한 통제를 원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더 큰 그림을 보고 계십니다.

 

 

전문: https://cbck.or.kr/Notice/20210030?gb=K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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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 꽃꽂이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id=181931&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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