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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레지오 단원과 그리스도 신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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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2-08-12 ㅣ No.513

제9장 레지오 단원과 그리스도 신비체

 

9.1 이 교리는 레지오 봉사의 기초이다.

 

모든 스포츠의 원동력은 기초체력이라고 한다. 이것을 무시한 기술이나 그 밖의 전력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2002년 붉은 전사들를 4강에까지 진군시킨 히딩크감독의 전략은 바로 기초를 잘다진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어떤 분야에서든지 기초가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경험이 되었다. 9장은 그러한 의미에서 레지오 단원들에게 중요하다.9장이 레지오 봉사의 기초원리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리스도의 신비체란 무엇일까?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한 교본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진다.'(에페소 1,23) 즉, 그리스도는 이몸의 머리요 우두머리이시며 없어서는 안 될 완전무결한 부분으로서, 다른 모든 부분은 이곳으로부터 힘과 생명을 나누어 받는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더할수 없이 밀접한 관계로 그리스도께 결합된다. 그러므로 이 신비체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성서에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다.(에페 5,30) 지체와 머리,그리고 지체와 지체사이에는 서로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신성한 의무가 있다.(요한 4,15-21)"

 교회란 한문으로 가르침의 모임이란 뜻이다. 즉 가르침을 받기 위해 모인 공동체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르침이란 복음을 의미한다. 즉 생명의 말씀으로서 이말씀에는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져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방법이 들어있으며 하느님과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참뜻이 담겨있다.

 그러나 교회라는 공동체는 입시를 목적으로 모인 학원의 학생들이 아니다. 단순히 개별적 개인이 한 목적을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마치 인간의 한몸이 여러기관으로 나누어져 있고 또 여러기관이 합쳐져서 하나의 생명을 이루는 것처럼 유지체적으로 결합되어있다.

 바로 교회는 한몸으로서 모여있는 것이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말씀하신 그 비유처럼!

그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그 공동체의 특성이 첫째로서 생명공동체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이란 이 세상에서의 한정적인 생명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누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누리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이 생명 공동체의 교회는 죄에 죽고 세례로써 하느님 자녀로 태어나는 교회의 입문성사인 세례성사를 통해 그 일원이 된다.

 둘째로 봉사를 통한 사랑과 일치의 공동체이다. 신비체란 거룩한 몸이란 뜻이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 죄 때문에 당신을 봉헌하시고 부활하시어 영원한 분이되신 우리의 구세주를 기념하며 재현하며 감사의 제사를 올린다. 우리는 이 미사를 통해 말씀의 전례안에서 그분의 생명의 말씀과 세상구원을 위한 역사하심을  배우고 묵상하며 성찬의 전례를 통해 그분의 거룩한 몸과 피를 나누어 마신다. 신비체란 말속에는 성체성사로 하나되는 사랑과 나눔 특히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상의 희생이 담겨져있다.

 단지 하느님과 영적으로만 마음적으로만 일치하는 소속감이란 뜻은 아니다. 따라서 신비체의 교리는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희생과 사랑의 행위안에 바탕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변적이며 이론중심의 봉사 원리가 될 수 없으며 실천적이며 증거적인 성격을 나타낸다.

그런데 레지오 봉사정신의 위대성은 봉사의 원리를 그리스도 신비체안에서 출발한 것 뿐만아니라 "초자연적 동기에 의한 봉사"라는 의미에서 더욱 잘 찾아볼수 있다.

교본은  "초자연적 동기에 의한 봉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맨 처음 레지오 단원들이 가진 회합에서는 그들이 시작하고자 하는 봉사 활동이 단순한 선행의 차원을 넘어서서 초자연적인 성격을 지녀야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레지오 단원이 사람들을 접촉할 때에는 당연히 친절히야하나, 단지 그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뵐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들이 활동중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 특히 가장 약하고 미천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 베풀어 드리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 하도록 했다."

 레지오를 자선 단체라 부르지 않는다. 또한 인류애를 실현하는 봉사단체의 정신과도 사뭇다르다. 위의 교본의 핵심문장 "그들이 활동중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 특히 가장 약하고 미천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 베풀어 드리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 하도록 했다."은 세상의 봉사와 우리 레지오의 봉사가 어떻게 다른가를 말해준다.

 장례미사때의 복음은 늘 같다. "너희중에 가장 미소한 자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것이고 너희중에 가장 미소한 자가 힘들 때 그를 돕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해주지 않은것이다."라는 내용의 말씀이다. 이 원리 그리스도인의 선택적 삶의 원리가 아니라 자신의 마지막 장례미사때 듣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상훈에서 이러한 신비체 교리에 입각한 초자연적 동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봉사의 의미를 되새긴다. "활동대상자와 동료단원들안에서 우리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뵙고 섬기듯이 봉사할것!"

 교본에는 '초자연적 동기' 내지는 '초자연적'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초능력이나 인간이 지니는 본능과 정상적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신비체 교리를 의미한다.

더 이해를 쉽게 한다면 봉사에 있어서의 자연적 동기와 대조해 보면 이해가 쉽다.

휴머니즘 내지는 인류애라고 말해지는 자연적 동기는 인간 본성안에 하느님이 심어주신 선한 마음과 양심을 나타낸다. 종교가 없어도 인간이 악보다는 선의 가치를 선택하려는 본성적 의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 단어 안에서는 하느님의 존재라든지 하느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것은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교본에서 말하는 초자연적 동기는 신비체의 교리에 기초한 의지적인 봉사를 의미하므로 교본을 읽을 때 초자연적 동기라는 말이나 신비체라는 말을 접했을 때 이들의 단어를 영적인 세계의 심리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형이상학적이며 사변적인 단어로서 이해해서는 안된다.

즉 레지오의 봉사의 기초는 그리스도 신비체 교리에서 잉태된 초자연적 동기라는 "변화의 진리 즉 인간과 인간 사이의 행위를 하느님께 드리는 행위로까지 높여 주는 이 원리 "에서 탄생되었으며 이 원리는 그리스도 신앙의 중심교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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