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8주일(나해) 마르 10,17-30; ’2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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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10-03 ㅣ No.4803

연중 제28주일(나해) 마르 10,17-30; ’21/10/10

 

 

  

 

 

 

 

 

지난 한가위에 유 신부님과 동생 수녀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어머님 아비님들은 왜 우리 자식들의 요청을 들어 주셔야만 했을까?’

안 들어 주셔도 그만이었을 텐데!’

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의 부모님들께 요구했어야만 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손으로 땀흘려 마련했어야 할 일이 아니었던가?’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해줘도, 들어주고 또 들어주어도, 자식들에게서 좋은 소리 한번 못들을 것을 뻔히 하시면서도, 왜 들어 주시려고 그토록 애쓰셨을까? 그런데도 왜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사주고,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먹이지 못해서 안타까워하셨을까?’ 그 마음에는 무엇이 들어있어서 그렇게 하셨을까? 지금에서야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우리가 갖고 싶은 것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달라고 조르고 갖은 심술을 다 부렸던, 우리 부모님이라는 존재의 마음 안에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사랑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치 않고서야 왜, 그리고 어떻게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위해 그런 수고와 희생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 10,17)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나에게 그럴싸한 말을 하며 혼란스럽게 하여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 아버지 앞에 겸손하라.’고 이르십니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18) 그러시고는 유다인들이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이라고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십계명에 관하여 일러주십니다.”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19)

 

그러자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20) 라고 자랑스럽게 그렇지만 대수롭지 않게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21)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일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22)

 

어쩌면 부자 청년은 자기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가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다 가지고 누리고 있었고,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에 둘러 쌓여 더 이상 필요한 것도 새삼 얻어야 할 것조차 없이 편하게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지루하고, 단조롭고, 그야말로 재미없었는지 모릅니다.

 

다른 부모들이 그 청년이 가지고 있는 재물과 누리고 있는 것들을 자기 자식에게 주기위해서 안달복달을 하면서 갖은 수고를 다 하고 있었을 텐데, 정작 그 부자청년은 그 모든 것이 당연한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고 있었는 데서 그만두지 않고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고 즐거워하지 못하고 무료하다고 여기고 있었는가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찾아와 새로운 뭔가를 도전하듯이 청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17)

 

그런데 더 좋은 그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지금 그 청년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포기해야 한다고 하니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여겨 더 이상 추진하지 못하고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에는 최고의 기대치요 바람이었건만 정작 그걸 누리고 있는 부자청년에게는 그것이 별 것 아닌 것이었고, 더 이상의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누리고 있던 것을 버리고, 그가 괜찮다고 여기는 것을 향해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부담스러웠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이 고개를 푹 숙이고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시고는,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23) 빌게이츠처럼 억만장자는 아니어도 나름 자신들이 먹고 살 정도의 재산은 가지고 있는 제자들이 놀라서 예수님을 원망스럽게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런 제자들의 시선을 아시는지 모르는지,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24-25)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26) 하면서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서로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시기에, 제자들을 바라보며 이르십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27)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현세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까지 여기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주눅까지 들어있는 듯한 우리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셨는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괜찮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만 보시고도 기뻐하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가 능히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이룰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신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가 주님 말씀을 이루면서 살 수 있도록 해주신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찾아 얻어도 부자청년처럼 행복할 수도 없는 꿈을 꾸고 있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그런 것을 얻고자 엉뚱하게 예수님께 기도마저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원한 생명을 향한 우리의 첫 걸음에 예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차마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예수님 사랑의 십자가 길을 걷겠다고 꿈꾼다는 것 자체가 호사요 사치라고 여겨 엄두조차 못내고 망설이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오셔서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27) 예수님의 위로와 격겨에 힘입어 영원한 생명을 향해 기꺼이 나아갑시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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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일 꽃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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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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