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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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81110506] 쪽지 캡슐

2008-07-04 ㅣ No.9232

*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랑 

 1988년 그해 겨울....

그녀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오늘은 자신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이 선물을 사들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올 것이다. 남편이 무얼 사올까? 내가 좋아 하는걸 사올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이미 흥분해 있었다.

정말 어린애 같은 여자다.... 그날 아침 출근하는 남편에게 가벼운 키스와 함께 건넨 직접 만든 주먹밥.... 남편이 맛있게 먹었을까? 혹시 모자라진 않았을까? 아내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흐믓함에 안절부절 못했다.

그녀가 이렇듯 어린애 같이 구는 까닭은 태어나 처음으로 차려 보는 생일이기 때문이다. 고아원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오빠 동생으로 자랐고 현재는 누구보다 행복한 부부가 되었다. 서로의 외로움을 알기에, 서로의 약함을 알기에 어느 부부보다 행복했다.

그녀의 남편은 농아다. 하지만 그녀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다. 아내는 그를 위해 맛있게 만든 주먹밥을 매일 남편의 손에 쥐어 준다. 남편은 주먹밥이 아니면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았다.

“정말 주먹밥을 좋아하나 보네?” 아침에 주먹밥을 건네며 그녀가 한 말이다. “오빠 조금만 참자, 지금은 어렵지만 행복하잖아, 우리도 나중엔 더 행복하게 사는 거야... 알았지?” 이내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떠올랐다. 고아시절.... 벙어리라고 놀리며 손가락질 당하던 오빠.... 아이들이 손가락질하고 놀리며 돌을 던져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마냥 히죽 웃기만 하는 오빠지만 행여 나를 괴롭히려 들면 미친 사람처럼 무리들에게 겁 없이 덤비던 오빠...

실컷 두들겨 맞고도 날보고 웃으며 눈가에 멍을 어루만지던 오빠, 남편은 정말 착한 남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9시가 넘고 있었다. 7시면 들어올 사람이 9시가 넘도록 오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걱정이 되었지만 자기를 놀래 키려고 그러려니... 하고 생각 했다. 그때였다. 고요함을 깨는 하이톤의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거기 조성욱씨 댁이죠?” “네... 누구시죠?” “놀라지 마세요.... 조성욱씨가 죽었습니다.“ 그녀는 순간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참을 멍하니 있는데 전화속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 지금 뭐라고 했죠? 우리 남편이 죽었다구요?” “하하 농담하지 마세요. 오빠가 왜 죽어요. 제 선물 사오는 중인데....” "........." "아무튼 빨리 동산 사거리로 나오셔야 겠어요....“

동산사거리... 바로 집 앞 사거리였다. 그녀는 영하의 추위인데도 실내복을 입은 채 뛰기 시작했다. 한달음에 동산사거리로 간 그녀 저 멀리 사람들이 많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고 길가엔 누군가 쓰러져 있었다.

그 앞엔 완전히 찌그러진 낯익은 오토바이가 보였다. 그녀는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갔다. “ 오빠.... 아니지? 오빠... 아니지?” 를 연신 중얼거리며... 그러나 그 남자는 정말 그녀의 남편이었다.

불쌍한 오빠의 한손에는 먹다 남은 주먹밥이 반쯤 얼어 있었고, 공포에 떤 듯 동그랗게 눈을 뜬 얼굴에는 밥풀이 잔뜩 묻어 있었다. 입 주변에 처량하게 밥풀들이 붙어서 얼어붙고 있었다. 남편의 눈가엔 두 줄기의 선명한 눈물 자국이 나 있었다. 아마도 죽기 전에 흘린 눈물인 듯 했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인데... 빨리 가야 하는데... 하며 흘린.... 아스팔트길에는 온통 생크림 케익이 처참히 널려 있었다. 그녀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부서진 머리핀과 함께...

옆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쯧쯧... 식사할 시간도 없어서 오토바이를 타며 주먹밥을 먹다가 사고가 났네... 너무 불쌍하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녀는 기절 할 것만 같았다. 죽어있는 남편의 얼굴이 너무나도 불쌍했다.

그때 그녀는 남편의 오른손을 보고 끝내 울고 말았다. 난편의 오른손엔 “사랑해” 라는 뜻의 수화가 그려 있었다. 벙어리였던 남편이 죽기직전 아내를 위해 남긴 말이다. 한참을 울었다. 갈기갈기 찢어진 남편을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오늘 내 생일이라고 일찍 온다더니... 꼭 선물 사가지고 온다더니...

한참을 우는데 한 남자가 말을 건넸다. 남편의 회사 동료였다. 남편은 회사에서도 따돌림을 받았단다. 같은 직원끼리 옹기종기 모여 맛있게 먹어야 할 도시락 대신, 혼자 멀리 떨어져 주먹밥을 몰래 먹던 남편...

오늘은 눈이 온다고 길이 제일 먼 배송지만 골라 남편을 시켰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한테 따돌림을 받으며 외롭게 지냈던 남편은 갈 때도 이렇게 외롭게 간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끌어안고 이렇게 말했다.

“오빠... 우린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부부 인가봐.” “우리 같이 잘 살 수 있는 곳으로 가자...“ 그러면서 그녀는 남편의 손에 쥐어진 주먹밥을 떼어 내며 ” 오빠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었어?“ ”이렇게 주먹밥을 먹어야 할 만큼 힘들었어?“ ”혼자 죄진 사람처럼 숨어서 먹을 만큼 힘들었던 거야?

그래?“ ”오빠를 이렇게 만들 정도로 힘든 거야? 엉엉엉...“ 그리곤 남편을 꼭 껴안은채... 한참을 눈물만 흘리며 그렇게 있었다. 사람들은 남편을 영안실로 후송하기 위해 그녀를 부축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남편과 한 손을 맞잡고 한 손엔 사랑한다는 수화를 하던 남편의 손에 똑같은 “사랑해” 라는 표현으로 남편의 손과 곱게 포개어 있었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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