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어머니를 떠나 보내며 드리는 따님의 편지

인쇄

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6-01-27 ㅣ No.3039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마음, 그리고 떠나가는 마음은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자신의 감정에 북받쳐 솟구쳐 오르는 눈물을 훔치며,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 아쉬움과 못 다한 사랑을 채워주시고, 성인들과 함께 주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장례미사를 치루며, 그 따님이 백혈병으로 일찍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어머님께 드리는 편지를 옮깁니다.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십시오.


엄마!

작년 이맘때부터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그 땐 엄마를 이렇게 먼 길 을 가게 할, 그런 무서운 병인지 모르고 그냥 감기몸살이 오래 간다고 생각했는데……. 나로서는 짐작도 못할 정도의 고통이었을 텐데. 약 먹는 걸 그렇게 싫어했으면서도 나 결혼하고 아기 낳는 거 보려면 꼭 나아야 한다고, 약 잘 먹어야 한다고 치료받던 엄마……. 마지막 눈 감을 때까지 나랑 아빠를 기다려줬던 엄마.


사실 아직도 그렇게 실감이 나지는 않아. 다른 사람은 다 있는데 왜 엄마만 사진 속에 있는 건지……. 오늘도 오전 11, 오후 7시에 중환자실에 면회 가야 할 것 같고, 면회를 가면 힘들게 버티고 있는 엄마를 보며, ‘조금만 더 좋아지면 일반실로 옮겨가자고, 일반실에 가면 내가 옆에 계속 있을 수 있으니까. 얘기도 많이 하고, 안마도 많이 하겠다.’그러면 금방 집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얘기를 엄마한테 할 수 있을 것 같아.


실감은 안나도 벌써부터 다 그리워 엄마.

많이 싸우기는 했지만 우리들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해외여행인 홍콩여행, 엄마랑 가던 새벽미사, 동대문, 목욕탕. 학원 오갈 때 엄마가 차로 태워주던 거, 엄마가 여기 삼성동 성당 독서대에서 독서를 하던 목소리랑 모습, 엄마가 해주던 맛있는 음식들, 아침에 깨울 때 고운아~’ 하고 부르던 목소리, 공부에 관해서는 엄했으면서도 내가 시험 전에 불안해하면 한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괜찮다고 다독여주던 거, 그리고 내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엄마 잔소리까지도 너무 듣고 싶어.


백혈병인지 모르고 감기몸살인 줄 알았던 그 때, 아픈 건 비슷했을 텐데 그 와중에도 내 머리카락 덜 빠지고 머릿결 좋아지라고 남대문까지 가서 빗 사왔던 거. 엄마가 항암하려 병원에 있을 때, 내가 엄마 병실에서 같이 자고 월요일 첫 차타고 학교로 내려갈 때, 엄마가 링거 맞으면서도 그 어두운 새벽에 1층까지 내려와서 잘 다녀오라고, 최선을 다하라고, 배웅해 주고, 날 한참을 서서 바라봐줬던 것도 그립고. 작년 부활절에 병원 로비에 꾸며진 부활 장식을 배경으로 엄마도 부활하듯 다 나을 거야라고 하면서 둘이 두 손 꼭 붙잡고 같이 사진 찍던 것도. 항암할 때는 병원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리고 했으면서, 내가 시험기간이어서 너무 피곤해서 못 일어날까봐 항암하는 와중에도 모닝콜 해 주려고 전화해주던 거. 그리고 더 이상 세세하게 적을 수 없이 맣은 일들. 생각해 보니 엄마의 행동들은 다 나만 위하는 헌신적인 모습들이었네...


그에 비해 내가 했던 행동들을 생각해 보면, 엄마한테 내가 한 잘한 일도 있지만, 아쉬운 일이 훨씬 많은 것 같아. 가장 아쉬운 건 지난겨울에 가족 유럽여행 못간 거. “앞으로 언제 또 시간이 될지 모른다.”며 기회될 때 가족끼리 여행가자고 했었잖아. 결국 스케줄 조정이 안돼서 못 가게 되었지만, 그 때 엄마가 원했던 대로 가족 여행을 갔더라면 우리 가족 너무 행복했을 텐데...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본인을 위해서는 아끼느라 해외여행도 안 가다가 결국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유럽에 같이 가지 못한 게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라. 그 외에도 나는 왜 그렇게 살갑지 못하고 짜증만 부렸었는지, 엄마의 헌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내 자신이 너무 답답하고 한심해.


3월에 응급실에서 처음 백혈병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 엄마가 나랑 아빠한테 말했었잖아. 엄마는 하루에 남들이 이틀을 사는 만큼 매일을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으니까. 엄마는 지금 죽어도 남들 시간으로는 백 살 이상 산거나 다름없으니 후회는 없다고. 문상 오신 분들 보니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모든 분들께 정성과 진심으로 대했는지 알 것 같았어.


그 때 이런 말도 했었잖아. 엄마가 날 강하게 키우려고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가르쳤고, 강하게 키웠는데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그렇게 하길 정말 잘 했다.” 라고. “다만 강하게 키우느라 살갑게 사랑을 많이 느끼게 하지는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 라고. 그런데 엄마 엄마는 남들의 두 배만큼 하루를 치열하게 살았던 것처럼, 다른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거의 두 배 이상으로 날 아끼고 사랑하고 한 없이 베풀어 줬으니까. 나는 27년간 압축해서 그 이상으로 받았으니까 괜찮아 엄마.


엄마가 준 사랑에 비해 나는 너무 무뚝뚝한 딸이어서 표현을 못했지만 이제 해볼게……. 엄마가 떠나기 전 3개월간 엄마 혼자 중환자실에 외롭게 있게 해서 미안하고, 힘든 투병기간 잘 버텨줘서 고마워. 엄마가 날 강하게 키워줬으니까 내가 아빠 위로하고 힘이 될게. 엄마가 내 엄마여서 너무 고마웠고 행복했어. 그에 비해 해 준게 없어서 너무 미안해. 그리고 표현할 수 없을 만틈 사랑해 엄마!”





5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