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5주일(나해) 마르 6,7-13; 15/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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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연중 제15주일(나해) 마르 6,7-13; 15/07/12
세상의 주관자는 주 하느님이시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님께서 벌리시는 것도 아니고, 그 일 하나하나를 주 하느님께서 관여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 하느님을 믿는 마음에서, 주님과 내 삶의 순간들을 연결시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매 순간 매 사건의 동인과 조건과 생성과정 속에는 나와 주 하느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세상에는 나와 주 하느님 외에도 내 인생에 관여하는 다른 이들과 자연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당장 뭔가 얻고 싶고,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기까지에는, 나의 노력뿐만 아니라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 즉 자원이 뒷받침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관계 당사자인 이웃들의 협력이나 승인 내지는 묵인이 있어야 합니다. 보이는 당사자들의 노력과 조건들의 조합 이외에도,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 일이 주 하느님의 뜻 안에 있기를, 기꺼이 주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때가 되어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와 다른 이들과 자연이 그 조건을 무르익고 채워지도록 준비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당장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생기고,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거나 또는 안 이루어지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단기적으로는 해결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그것도 내 일생을 다 걸어 투신하고 생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난 다음에 이루어질 것도 있습니다. 그런 꿈과 희망이 내 생애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지고 채워져, 마침내 그 날 그 때에 그렇게 주 하느님의 축복 안에서 성취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주 하느님께서 지금 당장 아픔과 고통의 순간에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기를 청하기도 하고, 단기적으로 어떤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 하느님은 우리가 기도하고 열심히 하면 들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안 들어주시는 마음 좁은 분이 아닙니다. 또 주 하느님께서는 내가 생각하는 좋고 옳은 것과 인간 윤리의 가치 기준에 구애 받지 않으십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나와 믿는 이들만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내 삶과 활동의 이해관계 당사자들 모두의 하느님이십니다. 아울러 천 년도 하루 같으신 하느님이시기에 내 전대와 후대의 사람들마저 고려하시고 섭리하십니다. 마치 성가대의 지휘자처럼, 모든 이해 관련 당사자들과 그 조건들을 다 고려하여, 주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이끌어 가고 계시며, 인간 구원의 업적을 이루어 나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 하느님께서 그 하느님 나라에서의 우리 구원을 꼭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또 그렇게 구원되기를 바라기에, 오늘 여기서 미리 그 희망을 앞당겨서 마치 그 희망이 이루어진 듯이 우리가 기쁨과 행복감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희망과 복음은 바로 이 기쁨과 행복입니다. 우리의 희망이, 우리 희망의 궁극적인목표이자 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축복의 결실인 우리 인간 구원이 그 날 그 순간에 이루어지고 말리라는 믿음과 희망 안에서, 오늘 하나하나 하루하루를 사랑으로 이루고 그 기쁨과 행복을 이웃에게 전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에페 1,17-18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