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동전 1006개

인쇄

김윤수 [81110506] 쪽지 캡슐

2008-07-22 ㅣ No.9293

 

동전 1006개

 

예상은 하고 갔지만 그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얼굴 한 쪽은 화상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두 개의 구멍이 뚫려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 코가 있던 자리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순간 할 말을 잃고 있다가 내가 온 이유를 생각해 내곤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회 복지과에서 나왔습니다.” “너무 죄송해요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해서요.” “어서 들어오세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밥상 하나와 장롱뿐인 방에서 이상한냄새가 풍겨왔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어린 딸에게 부엌에 있는 음료수를 내어 오라고 시킨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계세요. 얼굴은 언제 다치셨습니까?” 그 한마디에 그녀의 과거가 줄줄이 읊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집에 불이 나 다른 식구들은 죽고 아버지와 저만 살아남았어요.” 그때 생긴 화상으로 온 몸이 흉하게 일그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만 드셨고. 매일 저만 때리셨어요. 아버지 얼굴도 거의 저와 같이 흉터 투성 이었죠. 도저히 살수가 없어 집을 뛰쳐 나왔어요.”

그러나 막상 집을 나온 이 아주머니는 부랑자를 보호하는 시설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 몇 년간을 지낼 수 있었다. 남편을 만난 것도 그 곳에서였다. 남편은 앞을 못 보는 장님 이였다.

그와 함께 살면서 지금의 딸도 낳았고. 그때가 자기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남편은 딸아이가 태어 난지 얼마 후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전철역에서 구걸을 하는 일뿐.

말하는게 힘들었던지 그녀는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상담을 마치고 “쌀은 바로 올라 올 거구요. 보조금이 나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며 막 일어서려고 하는데, 그녀가 장롱 깊숙이에서 먼가를 꺼내 내손에 쥐어 주는게 아닌가? “이게 뭐에요?

검은 비닐봉지에 들어서 짤그랑 소리가 나는 것이 무슨 쇳덩이 같기도 했다. 봉지를 풀어보니 그 속안에는 100원 짜리 하나 가득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어리둥절해 있는 내게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하는 것 이였다.

“혼자 약속 한 게 있어요. 구걸하면서 1000원짜리가 들어오면 생활비로 쓰고. 500원짜리가 들어오면 자꾸만 시력을 잃어가는 딸아이 수술비로 저축하고. 그리고 100원짜리가 들어오면 나보다 더 어려운 노인 분들을 위해 드리기로요. 좋은데 써주세요.”

내가 꼭 가져가야 마음이 편하다는 그녀의 말을 뒤로 하고 돌아와서 세어보니 모두 1006개의 동전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 돈을 세는 동안 내 열손가락은 모두 더러워졌지만, 감히 그 거룩한 더러움을 씻어 내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한밤을 지세고 말았다.

부자들의 지갑에서 나오는 커다란 액수의 지원금 보다는 부끄러운 듯 살짜기 내미는 작은 정성이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122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