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각종질병' 확실히 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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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stephenking] 쪽지 캡슐

2000-02-23 ㅣ No.2404

  안녕하세요? 박동규입니다.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이제 7년간의 긴 대학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학사모를 썼습니다.(선의는 어제 썼고요) 하지만 평생동안 사각모 쓴 값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인지 가운의 무게가 어깨를 누르더군요. 이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하하하!

  어쨌든 한동안 교사 생활을 접어둔 저로서는 그저께 아주 신나는 일이 있었답니다. 요새 최용 시몬 선생님이 중고등부 주일학교 밴드 ’산마루’를 지도하고 있는데, 그중 올해 고1 올라가는 유민수, 박정원, 김다한 세 명이 급조한(?) 밴드 ’각종질병’이 지난 월요일(2월 21일) 오후 5시 신촌 매스터플랜에서 공연을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별뜻없이 한 두번 걔네들 밥을 사주다가 지난 일요일(20일) 연습에 우연히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낮에는 J’s Morning 모임으로 인해 별로 연습을 못하여 저녁 6시에 하기로 했는데, 최 선생님이 어디 가야해서 못 봐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양재문 스테파노 선생님한테 연습실 열쇠를 받아 6시부터 9시까지 같이 있어만 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남의 일이지만 상태는 심각하더군요. 이건 그룹사운드가 아니라 거의 사물놀이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연습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어떤 낯선 남자분이 들어왔습니다. 성가대 우태형의 후배라며, 음악 소리가 나서 들어왔다는 그분이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드럼 민수의 모습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몇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음악의 문외한인 저로서도 감탄이 나올만큼 정확하게 문제점을 짚어 주셨고, 직접 연주를 하며 학생들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한 번 한 번 연습할 때마다 아이들의 실력이 쑥쑥 늘어나는 것이 들리더군요. 2시간 남짓 있으시다가 나가실 때에는 처음의 ’각종질병’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9시에 애들을 보낼 때는 다소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죠.

  그리고 운명의 21일, 공연장으로 갔습니다. 알고 보니 중경고 밴드부 발표회였더군요. 그런데 남수가 기타리스트라서 그런지, 성당 학생들이 ’개떼’(?)같이 몰려 왔습니다. 그리고 누가 무슨 노래를 부르던지 무조건 ’유남수’, ’유남수’만 외치더군요. 드디어 우리의 ’각종질병’ 차례! 첫곡 ’갈매기’는 무난하게 넘어갔지만, 두번째 ’펑크걸’에서는 일요일에 걱정했던 대로 리듬이 조금 안 맞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곡 ’말달리자’에서는 드럼 전주가 나오기가 무섭게 모든 관객들이 환호하더군요. 결국 ’각종질병’의 데뷔 무대는 예상 밖의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해 보면 중경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Crying Nut’의 노래를 골랐고, session man guitarist인 남수가 맘껏 실력발휘를 했으며, 성당 학생들이 맹목적으로(?) 열광한 것이 ’각종질병’을 띄우는 데 큰 역할을 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태형의 후배분이 오셔서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 성당 신자 전체가 갔어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하나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사를 그만두고 하루하루를 세속의 먼지에 찌들어 가는 제 영혼에 신선한 청량제가 되었습니다. 물론 누구보다도 학생들에게 좋은 신앙 체험이 되었겠지요. 다시 한 번 우태형 후배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며,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여러분도 성당을 다니시면서, 특히 교사분들은 학생들과 함께 저와 같은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각종질병’ 화이팅!

 

추신 : ’각종질병’은 학생들이 박동규의 직업을 참고하여 생각해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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