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설 ’21/02/12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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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2-01 ㅣ No.4533

’21/02/12 금요일

 

 

 

 

 

 

지난 주 강론을 준비하면서, 저 어릴 때 아버님께서 집안에 걸어 두신 족자, 안효공 심온의 글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이 정도밖에 못 사는데, 너희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어찌하여 부귀영화를 꿈꾸느냐?”를 떠올리면서, 부모님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할아버님을 닮아 방랑벽이 있으셔서 만주로 떠돌아다니셨다던 아버님의 젊은 날의 기개는 어느 정도셨을까? 일제 징용은 어떻게 피하시며 사셨을까? 그 먼 방랑 생활을 하시다가 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황급히 달려와 전란 중에 황해도 어느 뒷산의 하얀 바위 밑에 할아버님을 묻으실 때, 그 마음은 어떠셨을까? 6.25 전쟁의 풍파는 어찌 넘기셨을까? 가평 고향 집이 수몰지역으로 선정되어 물에 잠기는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어떤 회한에 잠기셨을까? 전후에 그나마 사업이라고 하던 곳에서 회계 담당 천주교 신자가 횡령하고 떠났을 때, 어떻게 극복하셨을까? 그 직원이 양심의 가책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그나마 휘하의 직원이었다고 쫓아가 장사를 치뤄주시던 그 순간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어머님을 아내로 맞이했을 때 어떠셨을까? 아버지는 첫 집을 장만했을 때 어떠셨을까? 정작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의사의 오진으로 아들 둘을 허망하게 잃어야 했을 때,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아버지의 정신적 지주는 누구셨을까? 어렵고 힘들 때 누구에게 가서 하소연을 하고 조언을 구하셨을까?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누구셨을까?

 

외갓집에서 나름 딸이라고 고이 자란 어머님은 정신대 착취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작은 일터에 이름을 올리시며 얼마나 가슴을 졸이셨을까? 6.25 전란은 어떻게 넘기셨을까? 아버님이 어머님의 뒤를 따르며, 일부로 구둣발 소리를 크게 내도 뒤돌아보지 않으시고, 작은 돌을 발치에 굴려 보내도 아무런 내색도 없이, 꼿꼿이 집으로만 향하셨다던 어머님의 속내는 어떠셨을까? “장애자라도 좋으니 자식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 외갓집을 찾아, 다 늦은 아버지의 구혼을 지켜보던 어머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간신히 가정을 꾸려 첫 집을 마련했을 때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열 달 배아파 낳은 아들 둘을 잃으셨을 때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아들 둘을 잃고 그나마 하나 남은 아들이 신부가 되기 위해서 신학교에 들어간다고 할 때 그 심란한 마음을 어떻게 넘기셨을까? 또 다 큰 딸이 수녀원에 입회할 때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막내를 시집보낼 때 어떠셨을까? 명동 대성당에서 부제서품을 받던 그 날, 얼굴 가득 주름을 피시며 환희 웃으시던 어머님의 용안이 떠오릅니다. 어머니의 정신적 지주는 누구셨을까? 어렵고 힘들 때 누구에게 가서 하소연을 하고 조언을 구하셨을까? 어머니의 친구분들은 누구셨을까?

 

그런가 하면, 비록 눈 앞에 현실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들께서 원하시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부모님들의 이상과 가치관은 무엇이었을까? 부모님들은 무엇을 하고 싶으셨을까? 꿈으로 끝났을지 모르는 부모님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이번에 동생 수녀와 설을 준비하면서, 부모님에 관해서 너무나도 모르는 것이 많구나 하는 기억에 부끄럽고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은 부모님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오늘 주 대전에서 부모님 영전에 부족하나마 감사의 정을 담아 겸손되이 성체성사를 올려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35.40)

 

부모님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과연 저를 아는 이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 선배 사제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 동료와 후배 사제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 가족과 친구들과 친지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 우리 신자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

 

오늘 설날입니다.

어찌 보면 살아온 지난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적을 수도 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생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왕 세상에 나와 사는 삶! 다시 주 대전에 돌아갈 때, 이 생애가 후회와 아쉬움보다 기쁨과 행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설날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잘 보내시고, 보람찬 생애를 위한 설계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주님 사랑 안에서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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