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4주간 수요일 ’2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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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1-29 ㅣ No.4524

연중 제4주간 수요일 ’21/02/03

 

가끔 신문방송에 내가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면 대단하게 여기지만,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면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아는 것은 그 사람의 장점과 가능성을 아는 것일까? 아니면, 그 사람의 단점과 외적으로 내 눈에 비춰진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인양 아는 것일까? 후자의 모습만을 애써 기억하게 된다면, 내가 아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으로 여기며 착각 속에 사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감격하고 감사드리기보다는 힐난과 시샘을 표합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마르 6,2-3) 복음서 저자는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다.”(3)라고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4)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대목에서 복음사가는 신기한 표현 하나를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5) 그렇게 따지고 본다면, 주님의 기적 발생은 기적을 받는 사람의 믿음과 자세 여부에 달려있다는 인상을 전해줍니다. 그래서인지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6)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총과 축복도 내가 믿고 감사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총과 축복을 차버리는 결과를 빚게 됨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아울러 오늘 내가 처해있는 상황과 여건이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총과 축복인지, 아니면 장애와 패착인지도 되새기게 해 줍니다. 진리와 정의 그리고 공동체라는 기준 속에서, 어느 시각과 어떤 차원에서 성찰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겠지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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