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5주일(나해) 마르 1,29-39; ’2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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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1-30 ㅣ No.4528

                                                                    연중 제5주일(나해) 마르 1,29-39; ’21/02/07




 

 

집안에 누구 하나 아픈 사람이 있으면, 집안 식구들 모두 긴장하고 조심하게 됩니다. 웃는 것도 눈치 없는 짓이고, 어딘지 모르게 죄스러워 같이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아이가 아플 때 부모는 세상 모든 것을 다 바꾸고서라도 아이의 병고와 장애를 고쳐주려고 갖은 애를 다 씁니다. 부모님이 아프시면 자식들은 마치 자신들이 불효라도 저지른 듯 송구스럽고 안타까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어쩔 줄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환우를 간병해야 하는 커다란 고민 때문에, 작은 고민들은 고민도 아닌 것처럼 넘어가고, 왠만한 문제는 문제도 아닌 것으로 간주되어 그냥 지나쳐 가기도 합니다. 아울러 병이 든 사람에게 모두 다 집중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부모의 마지막을 앞둔 재산 싸움이란 부작용만 생기지 않는다면, 환우가 어른이든 아이이든 아픈 사람을 중심으로 가족이 하나로 뭉치는 효과와 기회를 가지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를 비롯하여 많은 환우들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마르 1,29)십니다. 처음에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향한 연유가 정확히 나오지는 않지만, 그 집에는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습니다. 가족들이 얼마나 화급하고 안타까웠을까 그 기운이 다가옵니다. 당시에도 나름 의료진이 있을 터인데, 가족들이 의료진에게 모셔가지도 못했거나, 모시고 갔어도 적절한 진단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더 이상 이렇다할 해결방법을 강구하지도 못한 상태에 놓여 있었나 봅니다. 가족들은 열이 끓어 의식이 약해지는 장모를 바라보며 저러다 혹시!’ 하는 재수없는 생각마저 들며, 불안해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러저러한 방법이라도 있었다면 썼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그저 집안에 누워서 마치 다음 생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에 주위 사람들이 예수님께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마르 1,31)시고 언제 아프기라도 했나는 식으로 일어납니다. 그리고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31) 듭니다. 앞서 회당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악령에게서 건져주실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면서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27) 하며 놀라며 감탄했던 이래, 바로 이어 시몬의 장모의 완전한 치유를 바라본 제자들과 사람들은 다시 한번 예수님의 영광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어제까지도 누워서 열이 펄펄 끓어 오락가락 하던 시몬의 장모가 하루 아침에 예수님의 치유로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곧바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식사 시중까지 듭니다.  시몬의 장모는 완전히 병이 치유되었 뿐만 아니라, 건강을 되찾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신기하고 감탄할 만한 일이었겠습니까?!

 

회당에서의 치유에 이어 시몬의 장모 치유 이야기는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28)갑니다. 그러자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그야말로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마르 1,32-33)듭니다. 그렇기도 하겠지요,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 마음이 이해가 가고, 어떻게든 자기 자식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매달리는 부모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치로 어떻게든 부모님의 완쾌를 기원하는 자식들의 애절한 마음들도 비춰 보입니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33)듭니다. 병고로 시달리는 가족의 고침을 받기 위하여, 또 예수님께서 어떻게 환우들을 고쳐주시는지 그 기적을 목격하기 위하여 동네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34)십니다.

 

그런데 왜 낮에 찾아오지 않고, 해가 진 밤에 예수님을 찾아들 왔을까? 아마도 그 당시에 환우가 낮에 돌아다니는 것이 적절해 보이지 않았거나, 나환우나 더러운 영이 들어 괴롭고 남사스러운 환우들로, 당시 사회에서 드러나게 낮에 돌아다닐 수 없는 형편의 환우와 그 가족들이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더 간절하고 애절한 가족들의 염원이 있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심정을 측은히 보시고 들어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더 깊고 친밀하게 환우들에게 치유와 아울러 새 생활로의 기회를 선사해 주셨으리라 짐작됩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35)시는데, 시몬과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37) 라고 재촉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스승이 빨리 내려가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고쳐주기를 기대하고 요청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예수님께서 환우들을 고쳐주시는 모습이 신기했음은 물론이요, 끊임없이 예수님께로 몰려드는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일종의 환희를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38) 라고 잘라 말씀하시고는 자리를 뜨십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러 인간계에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질병에서 해방시켜 주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그 모습을 회복하도록 해주시기 위함이며, 그를 통해 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병을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질병에서 벗어나 주 하느님을 찬양하고 새롭게 살아가기보다는, 어서 빨리 질병에서 벗어나 세상의 아귀다툼 속에서 승리하고 보다 더 높이 올라가 보다 더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싶어서, 이른바 자기 목숨 하나 살리려고 몰려드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달가워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그래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을 쫓아내시면서도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34), 라고 전합니다.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22-23) 라고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밝힙니다. 사도 성 바오로는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구원의 길로 접어들도록 해야 하는 사명과 그러한 길로 접어드는 이들의 치유와 새삶에로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기뻐하며 행복해하는 자신의 소명을 확인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환영받는 것 그리고 칭송을 받는 것은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겸손을 잃고, 마치 자신이 좋고 훌륭해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몰려드는 것으로 착각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 열광과 인기는 신기루 같은 허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됩니다. 인기와 영광은 잠시뿐이며, 내 외적 어느 특별한 부분에 대한 열광일뿐더러, 내 인격과 삶이 그에 따라 성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에게 각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내 재능을 통해 나를 완성하고 봉사함으로써, 아니 거듭 봉사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되어 가면서 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태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다른 말로 사해동포주의와도 같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내 자질을 계발하고 청하며 내 소명을 완성해 나가며 주님께서 내게 내려주신 사명을 완수하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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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일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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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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