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주님 공현 대축일(나해) 마태 2,1-12; ’2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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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12-31 ㅣ No.4493

주님 공현 대축일(나해) 마태 2,1-12; ’21/01/03

 

 

 

 

 

신자 여러분, 성탄 잘 맞으셨습니까?

지난 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예수 아기의 탄생은 과연 그 가족과 동시대 사람들에게 기쁜소식이었을까?’ 라는 주제로 묵상을 하면서, 예수 아기의 탄생이라는 하느님의 개입은 믿는 이들에게나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 아기의 탄생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축하하도록 선택받은 이들은 목자들이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왜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목자들이 제일 먼저 예수 아기의 탄생을 알아차리도록 하셨을까?’

 

그 당시 목자들은 다른 이들이 다 잠을 자는 시간까지도 깨어 밤 늦게까지 양을 치는 이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탄광의 광부들이나 외항선원들을 막바지에 택하는 직업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유다 근동지방의 목자들도 사회적으로 각광받고, 대우받는 직업이 아니라, 사회에서 밀리고 밀려서 자리잡는 일이었나 봅니다. 주위 다른 이들에게, 마치 부랑아나 도둑, 또는 어딘지 모르게 피해를 줄 것 같다고 느껴서 피하게 되는 그런 사람들로 사회에서 낙인 찍힌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 하느님의 천사는 왕궁이나, 부잣집이나, 학자들이나, 종교인들에게 예수 아기의 탄생을 알리지 않고, 목자들에게 알립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0-12) 그리고 루카 복음사가는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13-14) 라고 기록합니다.

 

과연 평화를 간직할 수 있을 정도로 주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15) 라고 말하고는,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16) 라고 합니다. 만일 목자들이 아니라 권세가나 가진 것이 많은 이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다면, 그들이 그렇게 서둘러서 찾아갔을까? 검증되지 않은 소식, 확인되지 않은 소식을 듣고 그들이 움직였을까? 그것도 한 밤에? 왕궁이거나 재벌가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 몸 누일 곳조차 없어서 마구간에서 난 아기를 보러?! 아기 하나가 새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뭐 그렇게 대수로운 일이라고 찾아갔겠는가? 그야말로 뭐가 아쉬워서?!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17) 라고 합니다. 목자들이 아기를 보고 나서,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전하였을까? 자신들이 본 아기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목자들은 남들 앞에서 이렇다하게 드러낼 수 없는 처지여서 그런지, 어떤 새로운 사실에 다소 위축되고 기가 죽어 있었는지 모릅니다. 어딘지 모르게, 주역이라기 보다는 관찰자요 방관자의 역할로서 남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 아기의 탄생을 보며 기뻐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했다고 합니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20)

 

목자들은 아마 자신들의 처지보다 더 헐벗고 비루하게 태어난 아기를 보고 정말 안쓰럽고 처절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범접할 수 없는 부와 권력이 아닌, 친근하고 오히려 더 다가가 만져주고 싶고,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보다 더 비참한 조건으로 태어난 아가 예수님이 그들에겐 더 큰 귀여움과 사랑의 마음이 동하였으리라 짐작됩니다. 거기다 천사의 알림이 범상치 않았음도 그들에게는 신비한 사건이었습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17-18) 최고의 영예로운 자리였어야 할 구세주의 탄생이 허름하고 남루한 탄생이라는 다소 상반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련한 예수 아기의 탄생이 목자들에게는 그런 의미에서 위로와 희망이 되었습니다.

 

예수 아기는 이렇게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기쁜 소식으로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예수 아기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에게 드러납니다. 나름 박사들이라고 할 때는 자신들의 나라에서 이렇다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분들일 터인데, 별이라는 작은 상징 하나를 발견하고 먼 길을 마다하고 국경을 넘어 찾아옵니다. 구세주의 탄생을 가리키는 별이 그만큼의 의미와 가치가 있었기에 찾아 나섰겠지요.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수도 예루살렘에까지 와서 왕에게 묻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그러자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3) 라고 합니다. 유다인들은 정작 그들의 임금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오히려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하는 이방인들이 와서 임금의 탄생을 알리고 찾자 당황한 것입니다.

 

유다인들도 모르지 않았습니다. 헤로데 왕이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메시아가 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니,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5) 그렇게 써 있기까지 했건만, 왜 그들은 구세주의 탄생을 알지 못했을까? 하지만 그들은 엉뚱한 영역에서, 엉뚱한 신분으로 오실 분만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왕궁의 새로운 후계자로 탄생하실 분, 재벌가의 새로운 오너로 부각될 분,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칠 정도의 명예를 거머쥐고 태어날 분, 경제사회적으로 뭔가 큰 영향을 끼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실 만한 능력을 가진 분들 중의 한 분에게서 나실 것이라고 여겼기에, 그들 가운데에서만 찾았던 것입니다. 유다인 어느 누구도 중간계층에 해당하는 목수와 그 아내에게서 구세주가 날 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몸 하나 뉘일 곳이 없어서 마구간의 말 구유에 누워 계신 분을 구세주라고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목자들이나 동방박사들에게 나타나신 공현 기사에서 드러났듯이, 이스라엘의 지도층들은 구세주의 탄생을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아니, 단적으로 말해 어느 혹자에게는 섭섭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구세주는 나름 가졌다고 하는 이들을 위해 탄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은 설사 구세주의 탄생을 알아차리고 찾았다고 해도, 동방박사들처럼 찬미와 경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현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박해하고 제거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왕권 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여긴 헤로데가 박사들에게 구세주 탄생의 시기와 장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자,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여버렸던 것처럼(마태 2,16 참조).

 

목동들과 동방박사들 앞에 나타나신 구세주 예수 아기의 탄생은 오늘 이 시대에도 재현됩니다.

 

우리는 어디서 어떤 형태의 구세주 탄생을 기대하고 추구하는가?

 

구세주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는 그것이, 나와 우리의 현세적인 입신양명과 물질적 풍요를 기대하고 추구하는 것이라면,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고 신화와 동화에서 나오는 과거의 이야기 거리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신앙의 본질인 주 하느님께 오늘 우리의 삶에 대해 찬미와 감사를 올려 드리며, 예수님의 말씀과 교회 전승에 드러난 주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구세주 예수님은 오늘 내게 탄생하실 것이고, 나를 탄생의 기쁨으로 초대할 것입니다.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마태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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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꽃꽂이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2&id=181622&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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