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대림 제2주간 목요일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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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12-01 ㅣ No.4469

대림 제2주간 목요일 ’20/12/10

 

우리나라 군대의 장수상을 드러내라면 이순신 장군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의 청렴결백한 공직자 정신과 전술전략은 많은 이들에게 감탄을 자아냅니다. 심지어는 우리 나라에 대패한 이순신 장군의 적이랄 수 있었던 일본인들까지도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고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 예언자에 빗대어 칭찬하십니다.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요한 11,14) 엘리야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한 유다인들이 가나안 농사의 신인 바알신에게 경배를 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목격한 엘리야 예언자는 유다인을 살려준 주 하느님은 에집트와 사막에서만 구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이 가나안 땅에서도 우리의 참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설파합니다. 그러고는 진정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농사의 신이 농사를 잘 짓게 비를 내려주실지, 아니면 유다인들이 믿어왔던 주 하느님이 농사를 잘 짓도록 비를 내려주실지 경쟁을 하여 결국 엘리야의 기도 끝에 대승을 거두고 바알신의 예언자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과 온 인류의 참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신 예언자입니다. 유다의 전설에 따르자면, 엘리야 예언자는 수명을 다하고 죽은 것이 아니라 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불가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구하시기 전에, 엘리야 예언자가 다시 와서 세상을 정화시키고 백성들이 메시아를 맞이하도록 준비시켜 주실 것이라는 전설 속의 인물이 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 예언자에게 비하셨을까? 그 질문에 대한 힌트가 오늘 예수님의 첫마디에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11) 엘리야가 유다 백성들이 주 하느님을 믿기는 하지만, 오늘 현실을 살아가기에는 바알 신에게 일단 절하고 따르는 것이 사는데 도움이 된다는 식의 이중 신앙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참 하느님을 발견하도록 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현세 권력자인 헤로데 왕에게 절하고 그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세상에서 헤로데 왕의 잘못을 지적하며 바로 잡도록 요구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주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율법대로 살아가는 것임을 밝힌 예언자입니다. 이른바 눈 앞에 당장 이득이 되고 급행선처럼 여기는 부정과 부패 미치 불륜의 고리를 깨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정의와 윤리 및 도리를 지키면서 살아가라는 요청을 한 예언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을 준비하는 이 때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를 참으로 건져주신 분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어떻게 살려주셨는지를 다시 되새깁시다. 그러한 성찰을 통하여 우리의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현실의 부당하지만 편안한 그러나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과도 같은 삶을 회개하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영원히 변치 않고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진실하고 성실한 삶을 통해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며 다시 오시는 주 예수님을 맞이하도록 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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