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가해) 마태 25,31-46; ’2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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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11-04 ㅣ No.4451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가해) 마태 25,31-46; ’20/11/22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맞으며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다는 표현은 무엇을 뜻할까?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인데 왜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주 하느님이 주인이라고 말할까?

 

또 우리가 세상에 나서 살아가는 것은 나인데 왜 내가 내 맘대로 신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말할까? 그 말이 내 가족과 생업을 포기하고,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위해서 일하라는 것일까?

 

만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 속에,

“내가 지금 간절히 이러한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오니,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 주소서!”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는 방식과 원하는 시간은 이것이니, 내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대로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좋은 일을 하는데, 왜 이의를 제기하고 장애가 이리 많은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나만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여 하는 일이니,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또 하느님이시라면 당연히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이런 일을 이만큼 했으니, 나에게 이 정도는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는 등등의 생각들이 마음 한 구석에 담겨 있다면, 그것은 내가 왕이고 예수님께서 나를 섬기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어쩌면, 나는 ‘주 하느님과 주고받는 계약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우리는 늘 ‘주님께서 허락하시고 주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라면, 주께서 원하시는 때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처리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자만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야고 4,13-15)

 

또 어떤 때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내가 실수했거나 잘못한 적이 없는 데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에 대해, 주 하느님과 사회에 그 책임을 돌리고 원망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성인으로 알고 있는 욥 성인도 이렇게 울부짖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죄가 없는데 하느님께서 내 권리를 박탈하셨네. 올바른데도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잘못이 없는데도 화살 맞은 내 상처는 아물지 않네.”(욥 34,5-6)

 

이렇게 울부짖으며 주 하느님을 원망하는 욥에게 주 하느님께서는 물으십니다. “지각없는 말로 내 뜻을 어둡게 하는 이자는 누구냐? 네가 나의 공의마저 깨뜨리려느냐? 너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나를 단죄하려느냐?”(38,2; 40,8)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잘못된 일을 당한다고 해서, 그것이 주 하느님께서 잘못 심판하셨거나 주 하느님께서 내리신 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벌어지는 그런 잘못된 것에 대한 책임을 주 하느님께 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벌이신 일이거나 이르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주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살아가면서 생기는 모든 일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것보다, 주 예수님께서 일러주시고 알려주시는 대로 사는 것이 우리가 선택한 것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믿고 따르는 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옳고 좋은 일을 하러 오셨는데, 사람들이 오해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고 죽이려고 할 때, 몸소 고통을 겪으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3,42) 예수님께서는 단지 아버지께 대한 효심이 남달리 깊어서 아버지의 듯을 따르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생각하는 방법이나 다른 이들이 일반적으로 세상을 구하는 방법이라고 제시하는 여러 방법들보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하시는 방법이 더 옳고 효과적이라고 믿었기에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인간을 죄악의 굴레에서 구하시기 위해, 인간 죄의 속죄 대가로 아들 예수를 희생 제물로 삼으시는 방법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동의하고 수긍하며 따랐기 때문에 십자가 상에 못박혀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힘으로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에 유혹 같은 권능을 포기하시고 아버지께 순명하셨음을 우리가 잘 압니다. 그러기에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시키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만일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우리 마음 속에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몸소 희생하신 주 예수님께 대한 단순한 보답이 아니라, 주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뜻이 우리 구원의 길이라는 수긍과 인정 및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체험에 의하면, 성당에서 예수님이 말하는 길보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맞고 또 그렇게 살아야만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살아가는 길이야!’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주 예수님이 일러주시고 비춰 주시는 복음의 길이 우리 삶의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임을 깨닫고 걸어 나갈 때 주 예수님께서 진정 내 삶의 왕이 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 주 예수님을 따라 아버지 하느님께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말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내가 만일 이 사회에서 아무도 돌봐 주지 않는 외톨이이며 소외된 양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면,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에제 34,16) 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만일 그렇게 남의 관심과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처지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총과 사랑이 나 말고 더 어려운 형제자매들에게 돌아갈 몫을 내가 대신 받고 있는 것이라고 여길 뿐만 아니라, 그래서 내게는 분에 넘치는 것임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오늘 복음에서 우리 교우들의 가슴 속에 그리스도 왕 되기 말씀으로 최후의 만찬 기사를 제시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님이 나를 맨 처음 찾아 주시고, 나 만을 사랑해주시고, 나 만을 도와 주시며, 나 만을 지켜 주시기를 바라며 사는 ‘나 왕 되기’ 삶에서 ‘그리스도 왕 되기’ 삶으로의 전환은 바로 이웃형제들 특히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임을 밝힙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4-36.40)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에서 우리 가운데 가장 작은 이들이 바로 주님 자신이며 형제라고 일러주시며, 우리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주님께 해 드린 것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오늘 우리 가슴 속에 주 예수님께 대한 깊은 믿음과 감사를 되새기며, 내 안에서부터 ‘그리스도 왕 되기’를 실현하며 나아갑시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1코린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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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꽃꽂이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80976&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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