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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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6-09-23 ㅣ No.3102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9/23

 

언젠가 한 신부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잘 바라보라고 하시면서, “지금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생명까지 다 내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축 늘어진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도 뭘 그렇게 더 달라고 청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무엇인가를 더 주실 요량으로 오셨다기 보다는 길을 잃고 어둠과 죄악의 굴레에 헤매고 있는 우리를 살려주시고 구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말이 더 맞을지 모릅니다.

 

어제 말씀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다른 이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례자 요한, 엘리야, 한 예언자라고들 하는데,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루카 9,20) 그러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20) 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주 하느님을 섬긴다고 자부하고 그것 때문에 살아간다고 착각하고 있는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벅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22) 라고 이르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바치라고 명하신 주님의 기도문에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마태 6,11) 라고 하심으로써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께 청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또 우리의 기도를 즐겨 들어주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더 달라고 청하기만 하기 보다는, 정말 주님께서 나와 우리가 청하기를 바라시는 것과 주님께서 나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청하는 것도 우리를 구하신 주 하느님의 기특한 자녀의 청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특별히 성령께 귀 기울이면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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