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부활 제6주간 토요일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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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05-19 ㅣ No.4262

부활 제6주간 토요일 5/23

찬미받으소서 주간 여덟 번째 강론: 우리에게는 생태 교육을 포함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 청주교구 황간본당 김태원 신부님

 

 

성덕 생활의 핵심: “하느님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는 현대 세계가 직면한 매우 복잡한 상황의 해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찬미받으소서', 219항 참조)

 

내적인 광야가 엄청나게 넓어져서 세계의 외적인 광야가 점점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베네딕토 16, 즉위 미사 강론, AAS 97) 환경 위기는 깊은 내적 회개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신심이 깊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부는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를 내세워 환경에 대한 관심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또 일부는 수동적이어서 자신의 습관을 바꾸려는 결심을 하지 않고 일관성도 없습니다. 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생태적 회개입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만남의 결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드러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성덕 생활의 핵심이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체험에서 선택적이거나 부차적인 측면이 아닙니다.

 

이러한 내적 회개는 곧 공동체적인 회개로 연결됩니다. 지속적인 변화를 이루는 데에 필요한 생태적 회개는 공동체의 회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교회 내부만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권 감수성’, ‘생태적 시민성’(ecological citizenship), ‘생태 환경적 덕에 대한 다양한 논의 등이 공동체적 회개의 사회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의 작품인 피조물의 세계를 지키려는 노력은 우리 신앙인들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의 공통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회 현상의 내면에는 환경 보호에 대한 긴급성과 필요성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태도는 부드러움이 넘치는 환경 보호의 정신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이 태도의 바탕에는 감사무상성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으로 선물하셨기에 우리도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포기하고, 누가 보거나 인정하지 않더라도 관대한 행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3-4) 이러한 태도는 하느님께서 신자들에게 주신 고유한 능력을 증진시켜 주어, 창의력을 전개하고 열정을 복돋우게 하며,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마 12,1)로 봉헌할 수 있게 합니다('찬미받으소서', 220항 참조).

 

인간은 자신의 탁월함을 개인적 영광이나 무책임한 지배의 근거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에서 비롯된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특별한 능력으로 이해합니다.”('찬미받으소서', 220).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과 지력과 능력들은 피조물을 위해서 조화롭게 사용되어야만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그 결과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절제를 통하여 성숙해지고, 적은 것으로 행복해지는 능력을 제안합니다. 행복하려면 우리를 마비시키는 특정한 욕구들을 억제하는 법을 알고, 삶이 주는 많은 다른 가능성들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찬미받으소서', 223).

 

우리가 겸손하지 못하고, 아무런 제한 없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신하게 되면 결국 사회와 환경에 해를 입히게 될 뿐입니다. 사실 인간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충분하지 않으며, 충분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요청되는 덕목은 건전한 겸손행복한 절제입니다. 이 두 가지 덕목은 우리를 내적인 평화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아울러 이 내적 평화는 생태계 보호와 공동선의 실현에 이바지할 것입니다. 이 내적 평화에는, 우리 가운데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것들 안에 살아 계신 창조주를 바라보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분의 현존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고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71)('찬미받으소서', 225항 참조).

 

사랑의 문명이라는 그리스도교적 이상은 돌봄의 문화로 꽃피우게 됩니다. ‘돌봄의 문화가 온 사회에 스며들도록 장려하고 참여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인식한 사람은, 그것이 자신의 영성에 속하는 것이고 사랑의 실천이며, 이를 통하여 자신이 성숙하고 거룩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가장 가난한 이들의 삶의 질을 돌보는 것이 강렬한 영적 체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자기 자신을 내주는 사랑을 표현할 때에 영적인 체험은 더욱 강렬해질 것입니다('찬미받으소서', 232항 참조).

 

성덕 생활의 핵심인 하느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 우리 개인을 성숙시킬 뿐만 아니라 피조물들을 보호하는 데서 얻어지는 공동선의 실현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찬미받으소서', 217항 참조).

 

산들마다 정상이 있고, 높고 장엄하며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꽃이 만발하고 향기가 넘칩니다. 이 산들은 제가 사랑하는 그분과 같습니다. 외딴 계곡들은 고요하고 아늑하며 시원하고 그늘져 신선한 물이 흘러넘칩니다. 그곳은 다채로운 식물과 아름다운 새소리로 인간의 감각에 깊은 휴식과 아늑함을 주고, 우리가 고독과 고요 안에서 기운을 복돋우고 휴식하도록 해 줍니다. 이 계곡들은 제가 사랑하는 그분과 같습니다”(십자가의 성 요한, 영혼의 노래, ⅩⅣ, 6-7)('찬미받으소서', 234항 참조).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적절한 동기 부여로 이를 받아들여 개인적인 변화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확고한 덕을 기르는 것에서 시작할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생태적 사명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더 많이 소비하고 지출할 수 있어도 난방을 하는 대신에 습관적으로 옷을 더 껴입는 사람은 환경 보호를 위한 신념과 태도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작은 일상적 행동으로 피조물 보호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참으로 고결한 일입니다”('찬미받으소서', 211).

 

영적 가난은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이 제시한 거룩한 불편심(不偏心)[치우치지 않는 마음]’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빛나는 내적 자유로 이끕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치우치지 않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자유 의지에 허락되어 있고 금지되지 않은 모든 것에서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질병보다 건강에, 가난보다 부귀에, 불명예보다 명예에, 단명보다 장수에 더 마음을 두지 않게 됩니다. 그 밖의 모든 것에서도 그러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69).

 

원문 https://blog.naver.com/cbckmedia/221956648306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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