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성령 강림 대축일(가해) 요한 20,19-23; ’2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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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05-30 ㅣ No.4271

성령 강림 대축일(가해) 요한 20,19-23; ’20/05/31

 

 

      

가끔 나도 모르게 미움과 원망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악마의 장난이겠지요. 문득 언제였는지도 명확치 않은, 꼴 보기 싫고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그 시절 그 시점의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 담아만 놓았던, 그래서 어쩌면 분노와 원망을 키워왔던 사건과 상황 속의 인물()이 슬그머니 생각나고 그()에 대한 증오와 저주가 솟구쳐 나옵니다.

 

그런가 하면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아쉬움과 허망함이 마음을 갉아먹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갑갑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상처의 골을 깊어지게 하고, 아픔과 상채기가 나를 후벼 파서 내 잘못도 아닌 것 같은데도 내 마음이 멍들어 가고 화병에 시달리게 만듭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유사한 상황으로 연결되면서 되돌이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이 겹치며, 알게 모르게 마음 속에서 분노가 커져갑니다.

 

그저 생각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으면 될 줄 알았 것만, 잊은 줄 알았던 괴로운 추억이 번득 번득 떠오르며 나를 약하게 하고 우울하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하곤 합니다. 나만 참고 희생해주고 감춰주며, 마치 내가 잘못해서 피하듯이 묵인해주며 넘어간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마음 속에서 그러한 상황들이 반복될 때마다 불신과 분노와 단절과 저주와 원망은 커지기만 하고 다시 또 마주치는 상황은 악의 세력처럼 기세가 등등하여 나를 억누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용서와 평화 그리고 성령의 현동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간략히 말하면, 평화를 얻으려면 용서하여라. 그런데 그 용서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되지 않으니 성령의 도움심을 청하여라. 그러면 성령께서 주님의 그 큰 사랑으로 우리를 휘감아, 우리의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우리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시며, 우리 가슴 속에 담겨 있는 분노와 원망, 우울함과 허망함을 녹여 주심으로써 우리가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시며 실제로 그렇게 용서함으로써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해주시리라는 믿음과 희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요한 20,19)라고 전합니다. 제자들은 나름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괜찮은 자리 하나라도 꿰찰 줄 알았거나 최소한 뭔가 새롭고 좀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맞이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하늘같이 믿었던 예수님께서 허망하게 잡혀 가시자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시는 빵의 기적도 베푸시고 죽은 이 마저 살리시는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맥없이 잡혀 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기대와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간 사회의 거부가 장벽처럼 막아 서서 두려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신병도 예수님처럼 잡혀 가서 운명을 달리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다락방에 숨어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 절망과 두려움 앞에 예수님께서 불현듯 나타나셔서 말씀을 건네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19) 그러시고는 어리둥절해 하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20)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20)합니다. 절망의 순간이 사라진 것일까? 다시 한번 희망이 되살아난 것일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일까 라는 의구심을 갖기도 전에, 예수님을 다시 뵙게 된 것만으로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좌절과 자책과 불안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21)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하고 신변의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원망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맥없이 가실 량이면 아예 기대라도 갖지 않게 하셨어야지!’ 또 하느님을 원망했는지도 모릅니다. ‘왜 그렇게 선하고 능력 있는 예수님을 지켜 주시지 않고 데려가셨을까!’ ‘이 부당하고 부정한 사회를 왜 그냥 두셨을까!’ ‘주 하느님께서 이룩하고자 하셨던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 아주 좋은 기회였는데, 왜 맥없이 포기하듯 막을 내리셨을까!’ 예수님이 잡혀서 돌아가시는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은 그런 원망과 분노로 들끓고 있던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쳐 매달려온 자신들의 인생이 실패와 좌절로 끝난 것만 같은 절망감과 자괴감 속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평화를 선물로 주십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얻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용서하는 삶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23) 그런데 말처럼 용서가 그렇게 쉬운 것일까! 맘만 먹으면 되는 그런 것일까! 주님께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수십 번 마음 속으로 용서한다고 다짐하고 되새기며 용서했다고 여겼는데, 그 사람을 다시 보고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되면 다시 분노와 원망으로 혼란스러워지는데! 다 잊었다고 여기고, 최소한 나는 미워하지는 않는다고 애써 외면했건만, 또 다시 그 상황 그 사람들을 접할 량이면, 감정의 혼란에서 헤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 인간의 생리를 너무나도 잘 아셔서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아라.”(22)라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에수님의 말씀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체험했으면서도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19)던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나서야, 두려움과 불안을 물리치고 일어섭니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1-4)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주 예수님을 죽인 로마인들, 그 죽음에 동참하였던 유다 지도자들과 백성들, 그리고 정작 자신들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리고 맥없이 자신들을 버리고 죽어 가신 예수님과 그런 선하신 예수님을 그냥 죽어 없어지도록 내버려두신 주 하느님을 향한 분노와 원망에서 해방되어 좌절의 늪에서 벗어나 일어서게 됩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져보고 함으로써 오감으로 이성으로 부활을 목격했지만 인간적인 반가움과 놀라움 그리고 신기함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임하시자 자신들이 아는 지식으로 그쳤던 무미건조한 믿음을 실제로 실현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도가 됩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처럼 제자들은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사도 12,3)라는 말을 실현합니다.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셨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사도가 됩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6-7)

 

사랑하는 신자 여러분,

오늘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아,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주시는 성령을 받으십시오.

성령을 받아,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머리와 마음 속에서 알고 있는 까마득한 이천 년 전의지식에 그치지 않고, 내 일상에서 실현해 냅시다. 살아오면서 불가능해 보이고 단순히 이상이요 꿈으로만 여겼던 복음의 진리를 실현해 냅시다. 단순히 삶의 덕목이요 인격의 수양으로만 여겼던 복음을 내 삶의 지표요 처세술로 삼아 실현해 냄으로써,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과 장벽들을 걷어내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단순히 마음 속에서 그래야지!’ ‘그러면 좋지!’라고 하면서도 주저하고 미루어왔던 복음의 진리들을 실현하여, 진정 내 삶의 현장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펼쳐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시킵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려 주시는 성령의 힘과 인도로, 코로나 19의 어둠과 불안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가 해방되어, 마음 깊이 주님의 힘과 평화를 간직하고 힘차게 오늘을 이겨 나가도록 합시다.

 

오소서, 성령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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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대축일 꽃꽂이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79138&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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