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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강론] 생명의 시작과 끝은 하나(!)-이철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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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4.10.164.*]

2013-10-20 ㅣ No.10346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기념일 [12/28]

 

1요한 1,5-2,2                         마태 2,13-18

2011. 12. 28. () 등촌3

 

주제 : 생명의 시작과 끝은 하나(!)

 

사람이 언제나 즐겁고 기쁜 것을 찾습니다. 헌법에 쓰여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은 인생에서 늘 기쁘고 즐거운 것만 기억하고, 그와 반대되는 것은 우리가 삶에서 생각조차 하기 싫어합니다. 물론 내가 이러한 것들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순순히 내게서 물러가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삽니다.

 

이것이 세상의 논리라면, 신앙에서는 어떠할까요? 질문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례에서 기억하는 요즘 시기는 예수님의 탄생과 그 기쁨을 말하는 성탄시기입니다. 성탄대축일과 그 축제나 기쁨의 크기가 같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성탄 8부축제일 기간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 축제일의 중간쯤을 지내는 오늘, 우리는 탄생의 기쁨대신에 어린아이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미사를 봉헌합니다. 여기까지 생각한다면, 신앙이 세상을 대하는 기준과, 세상이 신앙을 대하는 기준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자기가 바라거나 원하고 맘에 드는 것만 기억하지만, 신앙에서는 그 차원은 아니더라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기억하는 무죄한 어린이들은 자기들이 원해서 그렇게 죽은 것도 아니고, 자기 의지를 담아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때, 베들레헴 근처에 살던 2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이 한꺼번에 죽은 아이들을 순교로 기억하는 날입니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 이상하죠. 다른 사람의 목숨을 끊거나 더 오래 살려고 애쓰는 것은 분명히 인간인데, 어째서 동양에서는 이 일이 하늘에 달려있다고 말하겠습니까? 이때 말하는 하늘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질문은 하지만 알기는 힘든 일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태어나는 생명체를 보면서 기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생명이 떠나는 것을 보고서는 같은 감정이나 같은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같은 하늘에서 왔다가, 같은 하늘로 돌아간다고 할 텐데, 왜 그 자세가 다른 것일까요?

 

오늘의 기념일을 있게 한, 헤로데를 탓하고 원망해야 달라질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신앙인들이 가져야 한다고 말할 내용에 포함되지도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죽음을 만드신 것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내 탓으로 죽음이 고통으로 올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탓으로 그 죽음이 고통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같은 일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세상에서는 달리 말할 수도 있지만, 신앙에서는 생명의 시작과 끝을 하느님에게서 나와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한 가지로 봅니다. 거기에 삶의 성실함을 덧붙여 하느님께로 돌아갈 때, 우리가 영광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무죄한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오늘, 우리가 할 일의 한 가지는 세상에서 그 죽음을 기억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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