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4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 (다해) 마태 10,17-22; '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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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5-06-21 ㅣ No.6176

연중 제14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

(다해) 마태 10,17-22; '25/07/06

 

언젠가 천주교 의정부교구 가톨릭 사회복지회에 하느님은 삼등이라는 게시물이 올라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느님은 삼등

 

일등은 하고 싶은 일, 이등은 해야 하는 일

삼등은 하느님 만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해야 하는 일도 다 마치고

그 후에 여유가 있다면 하느님을 만나줍니다.

하느님은 삼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하느님은 삼등입니다.

내 힘으로 한 번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그나마도 안 될 때 하느님을 부릅니다.

하느님은 삼등입니다.

 

거리에서도 삼등입니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나 자신,

그 다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 다음에야 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삼등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나는 일등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도와주십니다.

내가 괴로워할 때는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오십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고 생각이 들 때는

홀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나는 하느님께 언제나 일등입니다.

 

나도 하느님을 일등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만나고

작은 고비 때마다 손을 꼭 붙잡는 내게

일등으로 가까이 계신 하느님이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게 일등이신 하느님을

나도 일등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충남 솔뫼에서 태어났습니다. 양반 가문이었지만, 그의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1801년 신유박해 때 집안이 몰락하였습니다.

 

김대건은 열여섯 살인 1836년 사제가 되고자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떠났습니다. 1844년 부제품을 받은 그는 선교사제의 입국을 돕고자 잠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1845817일 상하이의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고국에 돌아온 김대건 신부는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 사제의 입국 통로를 개척하려다가 18466월에 체포되어 여러 차례 문초를 받고 9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5개 국어도 하고, 한국 최초의 지도인 조선 전도도 제작하셨고, 감옥에서 정부의 요청으로 세계지도를 작성하고 지리 개설서를 저술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당시에 서양 문물을 공부한 몇 안 되는 인재인데, 왜 돌아가셔야만 했을까?

그냥 그렇게 1년 만에 순교하실 것이 아니라, 당시 조국인 조선 정부에 호의적으로 협조하고, 그것을 통해 조선인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선교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정부와 백성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인심을 얻으면 선교하는 데 더 좋지 않았을까?

시기와 방법론적으로 적당히 현실에 순응하고 협조하여 천천히 선교 사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고지식하게 , 아니오라는 이분법적이고 대결적인 국면으로만 몰아가 순교하셔야만 했을까?

 

한쪽으로는 아쉽기도 한 김대건 신부님과 뜻있는 선인들의 순교를 이렇게 정리해 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고,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신분에 따라 적절히 드러내고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신분과 그 신분에 맞는 지향에 맞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모든 것을 사제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쌓았고 발휘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형제자매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처세술, 그리고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과 재물들을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 말씀을 담고 있는 그리스도교회의 가치관에 맞춰 드러내고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가정이 먼저 아닙니까?”라는 말을 하고 또 듣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자신에게 십자가를 짊어져 주기를 바라는 공동체의 청원을 외면하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에서 도피하려는 허울 좋은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진심으로 자기 가정의 화목과 안녕을 위해 헌신하는 그리스도인 자녀가 되기로 합시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을 믿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또 듣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자기가 아쉬울 때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청하고, 하느님께서 그의 청원을 들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자기 투사에 적용하고, 자신의 청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2-13)라고 하신 그분의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합시다. 설사 그로 인해 우리 삶에 손해와 고통이 따를지라도!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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