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난곡동으로 온 지 만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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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현 [dalbong6] 쪽지 캡슐

2002-12-11 ㅣ No.1787

햇볕이 좋아 난이 잘 자라는 계곡이라는 뜻의 난곡동. 이 곳으로 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되었네요. 이 일주일이 일 개월이 되고 일년이 되겠지요. 많이 환영해 주시고 아직도 환영해 주시는 신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의 난곡동에서의 생활이 아주 기대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 이 만남을 곱게 곱게 아름답게 꾸며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난곡동 신자 여러분,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내내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주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참고로 저에 대한 소개를 올립니다(지난번 환영식 때 총무님께서 말씀하셨던 이문동 본당 홈페이지에 있는 저에 대한 소개 전문입니다. 물론 제가 썼지요).

 

1969년 04월 28일 이 충무공의 정기를 이어받아 (이날은 이 충무공의 탄신일이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출생함 (이문동에서 상당히 가까움)

1976년 03월 강남 초등학교에 입학

1978년 모월 3학년이 되서야 드디어 남들과 같은 수준으로 공부 시작. 왜냐하면 이 때에야

       비로소 한글을 깨쳐서 읽고 쓰고 할 줄 알게 되었다. 다른 이들이 우리 엄마에게   

       "아들이 생긴 것은 멀쩡한데 저능아 같아요"라고 말했다고 함.

1980년 모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됨. 4학년 때부터 좋아하던

       여인에게 프로포즈. 그냥 좋은 친구로 남자고 그 여자 친구가 말했음.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완곡한 거절이었음.

1982년 02월 강남초등학교를 개근상만을 탄 채 졸업

1982년 03월 상도중학교를 입학. 교복 자율화 1년 전이라 생각만해도 행복했던 검정색

       교복과 교모를 써볼 수 있었음. 물론 1년 후에 벗게 되었지만(그래도 교복

       세대였음)

1985년 02월 역시 초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개근상만 탄 채 졸업

1985년 03월 청운의 꿈을 안고 영등포 고등학교에 입학. 이 때부터 질 낮은 친구들 (키가

       작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공부보다는 오락에 더욱 열중하게 되었음

1986년 모월 운명의 황모양을 만나게 되다. 나는 소설 속의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운명은 참으로 얄궂었다. 나의 친한 친구가 황모양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

       나이의 아이라면 누구나 선택하는 친구를 택하고 그 좋아하던 황모양을 떠나보낸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올시다였다. 아무튼 그런 사랑의 아픈 상처를 안고 공부에만

       매진하게 되었다.

1988년 02월 개근상도 못 탄 채 영등포고등학교를 졸업

1988년 03월 88학번으로 서강대 경제학과를 우스운 성적으로 입학. 잘못된 과 선택으로

       경제학과는 상관없이 종교학과 학생으로 변함. 수학이 무지 싫었는데 경제학과는

       수학이 필수였음. 수학과 상관없는 과인 부전공 종교를 선택하게 되었음. 이것이

       어쩌면 신부로서의 삶을 사는 것의 시작이었는지 모름.

1990년 05월 날씨가 무지 좋은 어느날 ’해방신학의 이해’라는 과목을 듣는 시간에 그동안

       오래 생각해 왔던 사제의 길을 마침내 결심함.

1991년 07월 학교를 8학기만에 졸업하기가 무지 어렵다는 판단 아래 서강대학교 졸업장을

       포기하기로 결심. 서강대학교를 자퇴하고 학원생활 시작. 이유는 신학교를 가기

       위함. 많은 학원 친구들의 원망에 서린 눈빛을 받으며 공부해야 했음. "쟤는 좋은

       대학을 포기하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신학교를 간대" 하지만 나를 욕하고

       시기하던 친구들 곧 나의 인덕에 반하여 나의 수하에 들어옴.

1992년 03월 우스운 성적으로 신학교에 입학. 입학 당시 나이는 별로 많지 않았지만 액면이

       워낙 낡아서 거의 가장 나이 많은 신학생으로 오인을 받고 살았음

1992년 12월 22일 의정부로 머리 박박 밀고 군복무를 하러 감.

1992년 12월 22일~

1995년 02월 20일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군생활을 하게 됨

1995년 03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렸던 신학교에 복학을 하게 됨.

1997년 03월 독서직을 받음과 동시에 수단을 착용하는 착의식을 하게됨. 물론 수단을 입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포의 엉덩이 단련을 믿을 수 없는 인내력으로 견뎌냄.

1998년 03월 시종직을 받음. 신학교에서 복사를 설 수 있는 자격을 갖게됨. 이 해에 7전

       8기만에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 국가검저 자격증을 하나 갖추게 됨

1999년 07월 부제품에 오름.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무수히 많은 하느님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제로 서품됨. 이 때 부복하여 잘 살 것을 다짐. 독신서약을 얼떨결에

       해버림.

2000년 12월 13일 2000년 대희년에 마침내 사제로 서품됨. 이때 부복하여 또 다시 잘 살

       것을 다짐함.

2001년 01월 09일 이문동 보좌신부로 신부로서의 첫 발을 내딛음.

2002년 12월 03일 난곡동 보좌신부로 신부로서의 두 번째 발을 내딛음.

 

저를 더 탐구하시고 싶으신 분은 이문동 성당 홈페이지 보좌신부 소개란을 보시면 됩니다.

 

너무 길었죠. 읽으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끝까지 읽으신 분 복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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