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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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4-11-03 ㅣ No.88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오늘 성무일도의 제2독서의 성 베르나르도의 아빠스의 강론은 참으로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의 진정한 신학적, 영성적, 사목적,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베르나르도는 “우리가 바치는 칭송과 찬양 그리고 오늘 지내고 있는 이 축일 자체마저 성인들께는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드님의 진실한 약속에 따라 하늘의 아버지에 의해 영광에로 올림 받은 이들에게 우리가 바치는 지상적 영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들의 영광을 널리 전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보탬 되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성인들은 우리가 바치는 영예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 그분들을 기억하며 존경심을 바치는 것은 우리편의 유익이지 그분들의 유익이 아닙니다. ........ 성인들에 대한 기억이 우리안에 일으키거나 자극시켜 주는 첫 소망은 그들과 동반자가 되고 복된 영들과 더불어 동료시민, 같은 가족 성원이 되며, 성조들의 집회와 예언자들의 지위, 사도들의 모임과 무수한 순교자들의 군단, 증거자들의 무리와 동정녀들의 합창단에 한 자리를 얻어, 마침내 모든 성도들의 통교에 하나가 되어 그들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라고 오늘의 의미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인도의 성녀 마더데레사가 노벨 평화상을 받고 또 다른 여러 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상을 수여하는 의장이 상을 수여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아있는 성녀인 당신에게 이 상을 수여하는 것은 당신에게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여하는 우리와 우리의 영혼에게 깊은 교훈과 영광이 됩니다. 당신이 이상을 받아주심으로서 더많은 이들이 당신의 정신을 본받고 당신의 봉사의 정신을 닮고자 할것입니다. 상을 받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성인이라는 말을 로마교회가 전례적으로 지금의 시성식을 통해 공적공경의 대상의 개념으로 사용된 것은 지극히 후대인 11c초의 아우스 부르크 교구의  ulrich를 성인품으로 올리면서이다. 11c이후 이러한 시성식을 통한 엄격한 성인호칭의 수여에 대한 역사의 시작은 다음의 역사적 배경에서이다.

초대교회는 전통적으로 거룩하다는 성(聖)-SANCTUS의 칭호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만 적용하였다. 박해시대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닮는 것(Imitatio christi)은 바로 순교를 통해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었으므로 박해자시대에는 순교자들이 성인이라는 개념이 시작되었다. 이후 교부시대와 신학의 시대에는 호교론자들의 지혜로운 증거과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됨으로서 박해의 상황이 해제되고 수도원이 발전하므로써 그리스도를 닮은 것이 이단으로부터 신앙을 보호하는 증거와 복음의 삼덕을 실천하는 수도생활이 성인의 생활이 되었다.

오늘의 축일은 원래 6세기경 동방교회의 전례력에서 날짜는 다르지만 모든 성인의 대축일이 먼저 시작되었던 것을 8세기의 켈트지방의 교회에서 수용하여 로마 교회에서 시작되었고 이신심이 보편화되어 오늘에 이른다.

7세기 로마 황제 보니파시오4세는 당시의 교황이 로마의 만신전인 판테온 신전을 교황에게 헌납하고 가톨릭 교회의 전파을 장려하자 교황이 그간 순교자들의 시신과 공경을 받은 신자들과 성직자들의 시신을 판테온신전에 모시므로써 로마의 다신적 개념의 미신관을 지양하고 대신 성인 성녀의 에 대한 통공의 교리를 통해 선교적 차원에서 토착화하려는 시도로 시작된 축일이 오늘이다.

성인에 대한 공경 풍조는 중세에 있어 절정에 달았다. 11세기 초이전에는 성인에 대한 호칭을 수여하는 그 어떤 교회권한이나 전례가 없었기에  작은 본당의 성인 교구의 지역 성인 그리고 국가적 성인 등 다양한 성인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역사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을 지금처럼 심사하고 평가하여 마치 일류대학 드러가는 시험처럼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존경과 신망을 받은 이들의 영향이 커져가 동네에서 교구에서 지역에서 나라에서 그리고 대륙에서 그리고 보편교회까지 퍼져나가는 그자체가 물흐름처럼 부드러운 시대!의 성인의 개념이 지금은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이태리의 거리와 상점 그리고 골목에는 모두 성인들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작은 성인들의 이름이다.

또한 이시대에는  역으로 성조들과 성서의 인물들에게도 성인의 호칭과 서열을 매기게 되었다. 그리고 천주교의 우주관을 천국과 현세와 지옥과 연옥으로 장소적 개념으로 설명하므로써 천국에 있는 모든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하는 거룩한 사람들의 영을 모두성인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면 왜 하필 11세기에 와서 이러한 시성식을 갖게되었을까?

교회의 전례주년에 성인의 미사와 축일을 넣는 것이 불가능 할만큼 넘쳐나게 됨으로써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성인축일과 선정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조금은 오늘 축일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풍조가  생겨났는데 오늘은 축일표에 없는 모든 성인들이 공경받고 축일을 지내는 것이다하여 축일이 없는 세례명을 갖고 있는 이들의 축일을 챙겨주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성인의 개념은 이렇듯이 교회의 역사안에서 변해왔지만 변하지 않는 그 중심개념은 그리스도를 투영하는_닮은_ 사람(imitatio christi)이다.

하느님의 나라를 라틴어로 hic et nunc (여기 그리고 지금) 이라고 표현한다.

오늘은 지금(nunc) 천국에 계시는 성인들께서 그분들의 삶을 통해 닮아가신 그리스도를 우리또한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 원의를 더하고 그분들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와 공경을 올리는 날이다. 우리가 추석 한가위에 기도하는 미사의 감사송 역시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의 감사송을 바탕으로 만든 것임을 이러한 의미들을 종합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또한 천상의 성인뿐아니라 우리 주위에 함께 생활하고 있는 아름다운 성인들을 발견하고 우리의 삶의 자리인 여기(hic)에서 우리에게 담겨진 하느님의 모상으로 거듭남을 다짐하는 날이다. 성인은 죽어 천국 입성시험에 합격한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을 닮은 이들이며 우리 또한 닮아가야할 지금,여기에서 실현되어야 할 우리의 얼굴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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