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달봉 신부의 짧은 오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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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현 [dalbong6] 쪽지 캡슐

2003-01-17 ㅣ No.1841

아이고 저의 글을 기다렸을 수 천 명의 독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 좀 늦었죠. 오늘은 새벽부터 무쟈게 바빴습니다. 새벽 미사가 끝난 후 복사 친구들과 축구를 했고요 축구 끝나고 샤워하고 바로 장례미사가 있어서 이제사 글을 올립니다.

 

오늘 새벽 미사에 참석하신 분들은 강론을 제대로 못 하는 주례사제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와 하셨을 것입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런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친숙한 복음이고 자주 들어서 쉽게 다가왔던 복음 말씀이 강론을 쓰다보면 갑자기 이해가 안 되고 막혀서는 진행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이해가 안 되다가 시간이 흐리고 나서야 이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 그랬습니다. 강론을 쓸 때에도 강론을 할 때에도 이해가 안 되다가 이제사 이해가 됩니다.

 

오늘 복음 마르코 2,1-1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집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어떤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들고 옵니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지붕을 벗겨서 예수님 앞에 내려보냅니다. 그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율법학자들이 속으로 어떻게 감히 죄를 용서한단 말인가하며 의심을 품자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하는 것과 ’일어나 네 요를 걷어가지고 걸어가거라’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느냐?"하시며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병자의 치유와 죄의 용서는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사고 방식에 의하면 인과적 연관성까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위중한 병을 죄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육체적인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은 치유의 완성을 의미하며 동시에 인간의 죄가 용서 받는다는 증거를 의미합니다. 인간적 차원에서 본다면 만일 예수님께서 더 어려운 것, 말하자면 관찰될 수 있고 확인될 수 있는 육체적인 치유를 성취하신다면, 이로써 더 쉬운 것, 인간의 죄의 용서는 헛말이 아니었음을 입증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편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는 어떤 것이 더 쉽고 어렵고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병의 치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구원은 육체적으로 건강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화해에 있는 것이고, 이는 죄의 용서로부터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중풍병자에게 "네 죄는 용서 받았다"하고 선언하십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들이 속으로 어떻게 하느님만이 하시는 죄의 용서를 한낫 인간인 예수가 한단 말인가하고 의심을 품자 예수님께서는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것과 네 요를 걷어가지고 걸어가거라 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율법학자들의 생각은 물론 다른 이들의 생각도 잘못 되었음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물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것이 더 쉽겠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려운 일을 해 보이심으로써 인간의 죄도 용서받았음을 증명해 보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죄의 용서에 대한 선언은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하느님의 용서를 가져다주려 하셨고, 이를 통하여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명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달봉신부의 짧은 오늘의 복음 묵상이 아니라 긴 복음 묵상이 되었네요.. 너무 길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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