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마리에-old

제24장 레지오 수호 성인들 1. 성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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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5-05-04 ㅣ No.81

 

[53]

1.성 요셉


성 요셉 성인을 이해하는 데 매우 뜻 깊고 도움이 되었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신학교 시절부터 성 요셉 성인에 대한 신심을 갖고자 열망했지만 그다지 마음에 닿는 구절도 성서에 나타나 있지 않고 행적 역시 제시된 것이 없어 안타까웠다. 어떻게 성 요셉을 따르고 그분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약혼녀 ꡐ마리아의 임신ꡑ이라는 당혹스러운 소식에 고민했던 요셉은 꿈에 천사의 말을 듣고는 믿음을 갖고 묵묵히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었다!

우리는 성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養父)라고 칭한다. 사실 나는 성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라고 부르는 것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양부(養父)라는 말은 길러준 아버지란 뜻이다. 성령의 잉태라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예수의 친아버지인 성부(聖父), 즉 하느님 아버지와 구별하기 위해 성 요셉에게 굳이 양부라는 말을 사용한 듯 보였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지 한 인간의 아들이 결코 아님을 강하게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이렇게 나는 조금은 혼란스러운 호칭 양부(養父)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면담을 신청하였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ꡒ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서 힘든 점이 있어서 오셨나요?ꡓ 하고 여쭈자 그 단원은 ꡒ신부님, 단원으로서가 아니라 신부님께 기도를 부탁하러 왔습니다, 제 외아들을 위해서.ꡓ

ꡒ아! 정말 사랑이 많은 아버지시군요.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ꡓ

ꡒ아이가 사춘기를 겪고 있어요. 자꾸 방황하고 마음을 못 잡아요. 부모에게 반항도 하고….ꡓ

ꡒ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아버님. 저도 사춘기 때는 그랬어요!ꡓ

ꡒ그러셨나요? 아이를 위해 매일 지하철에서도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엄마도 기도를 많이 하지요. 부부가 같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니까! 저는 직장일 하느라 기도할 시간도 적습니다. 사실 우리 외아들은 입양했는데, 이 아들을 저의 몸에서 난 자식보다 한 번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아이가 서운한 생각을 하게 될까 봐 더 마음을 썼습니다. 사춘기 방황을 하며 대드는 아이에게 심하게 꾸지람하고 매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혹시 우리 아들이 친아버지가 아니라고 해서 더 서운한 생각을 가지면 어떻게 하나 하고 몹시 후회하였습니다. 괴로웠고 제 한계를 느꼈습니다. 내가 그 아이의 친아버지였다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되고….ꡓ

그 아버지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부성애가 묻어 맺힌 눈물! 나는 나의 아버지가 생각나서 교감(交感)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ꡒ아버님! 저도 기도할게요! 저도 그 아이의 영적인 아버지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신부(神父) 즉 영적인 아버지 아닙니까? 그 아이의 양부(養父)인 아버님과 신부(神父)인 제가 그 귀여운 아들을 창조하신 성부(聖父)께 마음을 모아 기도드립시다.ꡓ


그런데 얼마 뒤 그 단원은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밤늦게 사제관의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ꡒ신부님, 저 아무개입니다. 저 아무개의 아들입니다. 신부님, 문 좀 열어주셔요!ꡓ

ꡒ누구니? 아니, 너는… 그런데 이 시각에 왜?ꡓ

ꡒ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셨어요! 의식이 없으셔요! 빨리 와주셔요!ꡓ

그 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고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모르고 안타까워했다.

ꡒ우리 아버지 좀 살려주셔요! 우리 아버지!ꡓ


그 애와 나는 응급실로 급히 갔다. 그 경황이 없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매달리는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갔다. 응급실에 도착해 보니 다행히 그 사이에 의식이 돌아왔고 아버지는 아들을 찾았다.

ꡒ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ꡓ

아들과 양부(養父)는 서로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 모두는 손을 잡고 성부(聖父)께, 그리고 성모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돌아왔다.

그날 사제관으로 돌아올 때 나에게 있어서 성 요셉의 호칭,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養父)라는 칭호의 개념이 달라졌다. 양부의 길은 얼마나 힘들고 정성어린 길이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기른 사랑이 낳은 사랑보다 결코 못하지 않은 것이었다. 기른 사랑이 낳은 사랑보다 어쩌면 더 조심스럽고 고뇌해야 하고 겸손해야 하는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묵묵히 예수님을 기르시고 성모님을 보호하시며 의로운 사랑, 겸손한 사랑을 실천하신 성 요셉! 그분은 참된 양부(養父)이셨던 것이다.


어느 수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ꡒ너무나 당연한 것은 성서에도 안 나옵니다. 신부님!ꡓ

그렇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모두들 ꡐ목수의 아들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성 요셉과 예수님은 가까운 분이셨고 함께 일하고 사랑하는 정다운 부자지간이셨다.

두 분의 정이 돈독하였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여 성서에도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분의 음지에서의 기도와 마음 씀씀이는 앞의 예화처럼 겸손된 것이었다.


얼마 전, 늠름한 대학생이 된 그 아들은 청년 레지오 단원이 되어서 단장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본당에서 유명한 부자(父子) 레지오 마리애 단원!

나는 그 부자를 통해 양부(養父)의 마음을 알게 되고 나서 성 요셉 성인을 공경하는 데 기쁨을 갖게 되었다.

그 아버지의 기도 같은 겸손의 말이 기억난다.

ꡒ양부(養父)이기에 나무랄 것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곤 합니다. 또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합니다. 어쩌면 제가 양부이기에 아버지로서 더  철이 들 수 있나 봅니다. 이젠 부족한 저를 인정하고 그 아이와 잘 살려고 합니다. 그래야 그 아이의 친부(親父)를 천국에 가서 만나도 두 아버지가 서로 기쁘게 인사할 수 있겠죠!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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