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영적 교만(Sober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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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7-03-23 ㅣ No.374

 

영적 교만(Soberbia) -퍼온글 



분명하게 드러나는 교만이 있다. 이것은 비교적 덜 해롭고 끊기도 비교적 쉽다.
그 이외 영적 교만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신앙인들의 생활 속에서 살면서

그것을 파괴하는 교만이다.

오! 이것들은 얼마나 많은 해를 끼치며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이들에게 속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파멸로 내던져지는가!

또 다른 교만이 있는데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숨어 있으면서

영혼을 먹어 들어가 드디어 영혼을 죽이는 가장 해독한 교만이 있는데

이것을 완전 영적 교만이라고 한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이 교만이야 말로 참으로 예민하고 섬세한 방법으로 영성생활 안에

큰 해와 독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 교만은 나에게 속한 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가운데서 지배한다.


그들 안에서 그들의 이해력과 기억과 의지 안에 접힌 주름들 안에 아주 깊숙이 숨어 있다.

천상의 빛으로 찾기 전에는 너무 깊이 잘 숨어 있어서 찾아 내지 못한다. 이런 교만을 가진 이들은 대개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는 성인과 같이 보인다.

이 완전 영적 교만의 영을 가지고 있는 이들 자신들도 자기가 이 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때는 하느님의 특별 은총으로 이것을 볼 수 있게 하여 주면 기분 나빠하고

마치 자기에 대한 중상이라고 생각하며 내던져 버린다.

이런 이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것에서 구제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길이 없다.

오직 견고한 겸손만이 인도하는 길로 돌아가, 참되고 깊고 든든한 겸손의 영성생활의 길을 걷는 것이다.

교만이 주는 위험들은 성령께서 둘러쌓아 영혼을 보호해 주시는 은총과 성령의 은사가 없으면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거짓이 담긴 비범한 생활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교만이 지배한다.

어떤 때는 참된 비범한 생활로 들어가는데 들어갈 때는 잘 들어갔으나 나올 때는

결함을 가지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때는 교만의 영이 얼마 동안은 위장의 탈을 쓰고 속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정체가 드러나는 경우다.

완전하고 내적이며 참된 비범한 생활 안에는 성령께서 자리 잡고 계시면서 영혼의 적들을 무찌를 수

있는 무기인 겸손의 은사를 주시어 그것을 사용케 하신다.

영혼이 이 겸손의 덕에 충실하는 한 교만은 이 영혼을 뚫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없을 뿐 아니라 들어오려 다가 도리어 자신이 완전히 부서져 내 동댕이쳐진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이 특별한 은총은 아주 드문 숫자의 영혼들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므로 보장이 없으니 사람들의 모든 생활과 영혼의 움직임 안에 깨끗지 못한 숨결로 접종시키려는 모든 죄의 으뜸가는 이 적과 싸움을 하는데 쉬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내적 영성생활을 할 때는 경각심을 가지고 해야 한다. 대부분의 영혼들은 영적 교만과 완전한 영적 교만의 섬세한 그물에 걸려 졸게 되고 그 다음 그곳에서 잠이 깊이 들어 버린다.

그들은 그들의 지옥의 영을 가지고 졸게 하는 뱀이 자기네 밑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찾아낼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네 눈에 항상 싱싱하게 보이는 것 같은 그들의 생활 안에서 마음을 푹 놓고 지낸다.

또 자기 주위환경을 자기 마음에 잘 들게 또 아주 깊은 내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어떠한 다른 바람도 이 부드러운 공기를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면서 이 공기를 호흡하며 생활한다.

이들은 외적 겸손을 수련하는 습관적 행위를 실천하면서 생활한다.

그래서 자신들은 교만에서는 구제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때 저주받은 악한 뱀이 꼬리를

내미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보속, 공동 극기 또는 개인 극기까지 하면서 규율을 지키고 생활하기 때문에

하느님께 대한 의무를 완수했음과 관대한 행위를 행하였다는 데서 갖게 되는 평화를 갖게 된다.

이런 것들에 대하여 내적으로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되며 때로는 어떤 방법으로

이것을 과시하게도 한다.

그리고 자기는 다른 이들보다 더 잘하고 있으므로 더 가치가 있어 하느님께서 자기를 특별히 더

사랑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아주 비밀한 곳에서 생기게 해준다.

어떤 때는 이것들이 유혹에서 오는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쫓아 버리면 사실이 그렇지 않나 하는

의아심을 마음속에 넣어 주면서 여기에서 오는 어떤 맛을 느끼게 해준다.

그뿐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어떤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또 은근히 즐겁게 해 주면서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이렇게 하여 이 완전 영적 교만의 영은 영혼이 자기 안에 있는 공기도 알아채지 못하게

서서히 빗나가게 한다.

영적 착각을 하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 이들은 자기 마음 안에 일어나는 이 유혹들을 진실로 믿는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기 자신의 향을 피워 그 향에서 나오는 냄새에 취하여 생각하는

유혹들이다.

이런 이들은 자기의 영혼을 성찰하면 비록 입으로는 자기가 죄인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자기가 거룩하게 보인다.

그들의 현혹된 눈으로는 자기가 쓰고 있는 화관을 아무도 머리에서 내릴 수 없으리만큼

자기가 거룩하다고 생각한다. 죄와 실수는 자기와는 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본다.

이런 사람들은 떨어지기 일보 직전에 있는 자신을 보지 못한다.

악마는 이런 사람들을 비밀히 자신들을 높이 들어올리게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영혼들을

수확할 방법을 만들고 드디어는 자기의 것으로 거두어 간다.

성직자와 수도자들 가운데 이런 이들이 참으로 많다.

이 교만을 파괴시키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라야 한다. 즉 십자가의 고통이다.

그리고 천상의 움직임과 이 십자가 만으로만 사탄을 멀리 쫓을 수 있고 그의 도구를 파괴시킬 수 있다.

사탄은 방심하고 있는 이들과 피상적인 영혼들에게 그의 독을 넣은 꿀로 달콤하게 속여 가면서

위로를 줄줄 알기 때문에 이것들로부터 구제 받기 위해서는

활기 있는 희생과 묵은 옛 자기 자신을 파괴하면서 덕을 꿋꿋하게 실행하는 견고함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는 교만의 모든 정체를 드러나게 한다.

십자가의 고통은 영성생활을 촉진시켜 주면서 자신의 영성생활이 사탄의 독이 찬 꿀로 달콤하게 덮인 가장되고 위험한 비범의 길이였음을 분명히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성직자, 수도자 또 깊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람들 중에는 세속적이고 감각적인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십자가의 부족으로 침체된다.

십자가의 고통이 이들의 자리가 되어야 하는데 반대로 편안함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다.

자, 이제 영혼들이 깨어야 할 때가 왔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십자가의 고통이 교만을 파괴하기 위하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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