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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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7-03-23 ㅣ No.375

다해 사순 4주간 금

 

요한 7.1-2,.10.25-30

 

사순절에 우리는 "죄를 뉘우쳐야!"함을 강조합니다.

 

뉘우신다는 것이 정말 구체적으로 어떤 뜻일까?

 

 우리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각자 뿌연 개념을 갖고 이것을 생각하지 않은지?

 

뉘우치다는 4가지 동사가 어우러진 동사이다.

 

울다. 치다. 눕다. 늬다.

 

 

한사람이 자신의 근원을 향해 뒤로 돌아선다- 늬다.

 

그는 자신의 근원이 흙인것을 알고 자신의 욕심과 미움과 그밖에 자신을 괴롭혔던 감정과 사건에 막닿드린다. 어린아이가 울듯 대책없이 자기 설움에 우는 듯이 그는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정화와  참회의 울음을 터트린다.- 운다.

 

그의 울음의 자기 자신에 대한 근원의 문제이며 본질적인것이다.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심연아래 창조주로 부터 받은 영혼의 뿌리에 맺어진 울음을 하기에 그의 울음은 어린아이가 울때처럼 그의 울음 소리는 한 층 치오른다. 치고 친다. 북받치는 어린 꼬마의 울음소리! -치다.

 

 어린 아이는 탈진이 된다.  가슴울렁이며 지쳐 눕는다. 어느새 그 사람의 머리는 땅에 닿고 땅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한숨 큰 숨을 쉰다. 이제 앞만 보고 속끓이며 끌려가던 인생살이는 온몸이 땀에 범벅된체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돌리며 서러웠던 가슴이 진정국면으로 드러간다.

 

그러나 아직도 그 사람의 가슴은 뛰고 있다. 아이는 흑흑 심하게 달리던 말이 숨을 고르듯 숨을 고른다.

 

시적으로 나나름대로 적어본 것이다. 어린아이의 울음 그는 가슴저미도록 운다.  그모습속에 우린 진정한 뉘우침을 본다. 뉘우침을 누구에게 사과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뉘우침은 사과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하게 되는 것이다.

 

성예로니모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에서 사순절에 죄를 뉘우치라고 하는 것 그리고 남을 사랑하고 자선과 단식을 행하라고 하는 것 성덕과 겸덕과 망덕 등 덕으로 끝나는 좋은 것!  어쩌면 신물이 난다.

진정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그 근원에 대한 의식이 있다면 이 모든 말들은 한꺼번에 이루어질수 있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 근원에 대한 대답  모든 덕을 이루는 힘을 받았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여라!"- 재의 수요일 사제의 권고말씀

 

내가 흙이고 흙이었다는 근원의식!은 겸손이라는 사랑이라는 봉사라는 아름다운 말보다도 더 근원적이다.

 

내 주제가 흙임을!  뉘우칠때 우리는 누워서 돌아서서 울면서 흐느끼며 나의 욕망과 번민의 불을 끌수 있다.

 

즉 나의 번민의 도가니의 불길을 나의 근원의식인 흙이며 흙으로 돌아감으로 즉 흙으로 끈다.

 

우리는 흙에서 왔으니 자꾸 황금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꾸 자기 발전이라는 아주 아름다워 보이는 전진명령의 채찍질아래하루를 시작한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존재를 위해 부활이며 생명이신 하느님이 흙의 존재인 미약한 인간이 되시고 죄가 되었다.

 

신이 죄가 되어 죽어 흙에 묻히시어 부활하시면서 우리는 생명을 얻는 흙이되었다.

 

나는  신물이 난다는 성인의 말에 공감한다. 교회안에서 너무 좋은 말이 많다. 하지만 성인의 말씀처럼 그 많은 덕들에 대해 배우고 듣는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은 오히려 그 덕들은 나에게는 오르지 못하는 높은 산에 대한 경외심이나 감탄의 인식을 가져올수 있다.

 

자신이 흙임을 안다면 누구를 판단하고 미워하랴?

 

자신이 흙에서 왔고 더우기 또 흙으로 돌아갈 존재라면 더 누구를 더 판단하고 더 미워하랴?

 

자신이 진정 뉘우쳤다는 사람은 곧 남을 판단하고 미워할것이다.

 

사랑하고 겸손한 사람이 뉘우친 사람이지 뉘우친 사람이 사랑하고 겸손할수 없다.

 

우리는 늘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위대한 탐험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힘든다면 그것은 길을 잘못든 것이고 길을 잘못들었다면 그것은 자신의 현위치를 모르는것이다.

 

자신이 나아갈 바를 모른다는 것은 어려움이고 현재의 어려움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현재의 위치파악을 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그러할때에 우리는 이것이 필요하다.

 

길을 잃었을때

 

우리는 지도를 펼쳐 자신이 출발한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출발점을 아는 것이 목적지를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

 

뒤돌아서서 가는 사람은 없지만 길을 잃었을때는 뒤돌아서는 것이 앞으로 가는 것이다.

 

근원이라는 출발점은 도착지의 테이프와 같다.

 

마라톤 선수들은 도착지의 테이프를 끊는 순간 첫 운동와 끈을 멜때가 떠오른다고 한다.

 

비가 내린다. 봄인지 가을인지 기분이 좀 그랬는데

 

저 비가 어디서 왔을 까 그 근원을 생각해 보니 반갑다.

 

하늘에서 온 존재를 흙인내가 반기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늘손님인 비에게 흙인 내가 뉘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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