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마리에-old

제 23장 레지오 기도문은 변경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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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5-05-04 ㅣ No.80

 

[52]

변경(變更)이라는 말은 깊은 역사적 뿌리에 대한 숙고를 하고 난 후에 밭의 물길을 조금 바꾸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변경은 이만큼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며 마치 아기를 낳은 어머니와 같은 조심스러움이 요구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새롭게 탈바꿈한다는 의식으로 교회의 모습이나 기도의 방법을 바꾸려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요즈음 들어 세상의 빠른 발전 원리와 세속적인 방법이 그대로 교회와 특히 레지오 마리애에 유입되는 경우가 있다.

전통보다는 변화가, 꾸준함보다는 변신이 마치 발전적이고 가치 있는 것처럼 강조되는 오늘날에 깊은 묵상과 꾸준한 노력 없이 무엇을 변경한다는 것은 영적인 교만에 해당된다. 레지오 마리애를 얼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속 사회에서 배운 전문지식이나 일반상식 수준에서 이것을 도입하거나 이를 기준으로 교회와 레지오의 영성을 판단한다면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판단이 되며 어쩌면 레지오 마리애의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


우리는 레지오 기도문과 조직의 운영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ꡐ보편교회와의 연대ꡑ(聯隊)이다. 연대란 쉽게 말하여 하나됨이다. 연대는 바로 바오로 사도의 신비체 교리에 근간을 둔다. 즉 우리는 ꡐ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마음과 한몸 유기체ꡑ(有機體)라는 것이다. 이는 성령의 은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 천주교에서 신자들 대부분이 자랑스럽고 편하고 행복하게 여기는 부분들에는 이 연대성, 즉 하나된 통일이 이루어짐이 대부분이다.


로마 가톨릭의 전례를 보자!

각 나라마다 말은 다르지만 그 전례의 진행과 행위와 의미와 경문은 모두 같기에 우리가 어느 성지에 가서도 미사에 어렵지 않게 참석할 수 있다. 만약 미사 전례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면 지금의 개신교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본당이 다르면 그 전례를 이해하지 못하고 참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또 성직자의 예복도 그러하다. 만약 신부님들이 모두 각자의 개성으로 아이디어를 내어 자신만의 예복을 착용한다면 많은 신자들이 외적인 모습만으로 신부님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기도문의 몇 마디만을 바꾸어도 적응하는 데 사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처럼 전통은 뿌리이기에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린다. 만약 기도문이라는 것이 어떤 세속적 유행이나 기계라면 ꡐ편리와 발전ꡑ이라는 목적이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기도문은 영적인 부분이다.

반찬은 바뀌어도 밥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성지순례나 외국 본당이나 수도회 방문 시 함께 기도하고 미사드리는 등 전례에 참여할 때마다 성가도 같고 예식이 같음에 참 편안함과 일치감을 느낀다. 통일과 연대는 바로 이러한, 굳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신자들, 특히 레지오 단원들이 어느 성당을 가더라도 어느 다른 교구의 레지오로 옮길 경우에도 글자 하나 다르지 않은 이 기도문과 전례로써 봉헌된다는 점을 우리는 무척이나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

천주교회의 모든 기도문은 이렇듯 연대와 통일이라는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보편교회, 즉 ꡐ넓다, 두루 미친다. 편을 가르지 않는다ꡑ는 뜻의 보(普)자와 ꡐ한계와 배제를 두지 않을 편ꡑ(扁)으로 이루어진 이름이다.

 

레지오 기도문이 한국에서 몇 번 바뀌었다. 이것은 기도문의 내용이 바뀐 것이 아니다. 기도문은 각 시대의 언어로 되어야 하기에, 언어는 그 의미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되고 생성되기에 기도문의 전통적인 의미와 영성과 신학을 더 완전한 동시대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수정한 것뿐이다. 따라서 추가나 교체의 작업은 없었다. 사실 많은 나라나 교구에서 그 나라의 성인과 그 교구의 신심을 드러내는 내용을 레지오의 기도문에 삽입하고자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레지오의 모든 규칙을 만든 나라가 아일랜드고, 아일랜드의 주보성인 파트리치오 성인이 국민들로부터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국가나 지역에서 왜 이 같은 희생(?)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쉽게 납득하게 될 것이다.

특정 성인께 대한 호칭기도를 용인하는 것 그 자체는 레지오 단원이 공통적으로 바치는 기도문을 크게 달라지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 레지오 조직 체계를 흐트러지게 할 싹이 들어있어, 레지오로서는 그런 어린 싹마저도 염려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레지오의 정신은 그 기도문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 말로 바치든 가장 정확하고 통일된 공통 기도문을 바침으로써 레지오의 깃발 아래 봉사하는 모든 단원들의 정신과 규율이 완전히 일치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레지오 마리애의 조직과 기도문이 레지오 마리애 창립과 더불어 계속 불변의 상태가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을 통해 토착화되었다는 것이다. 토착화(土着化), 즉 각 지역교회와 본당 실정에 맞게 통일성과 연대성을 유지하면서 전통 안에서 성장하였다고 표현할 수 있지 변화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변화보다는 성장이다.

우리 레지오 마리애는 일치성 안에서 다양성을, 다양성 안에서 일치성을 추구한다. 기도문은 그러한 맥락에서 변경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다양성과 발전을 위해 조언할 수 있고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각 단원들에게 우리처럼 보장된 단체를 일찍이 보지 못했다. 회의록까지 남기고 상부에 보고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각 단원의 마음과 의견을 존중한다.

따라서 레지오 마리애 기도문은 변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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