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네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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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 [totoro] 쪽지 캡슐

2008-10-04 ㅣ No.9560

요즘 왠만한 차에는 네비게이션이 있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쉽게 이야기 해서 <컴퓨터 전자지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저는 작년에 큰맘억고 네비게이션을 구매 했습니다.

왜냐면 초행길을 가다가, 길을 몰라 잠시 지도를 펼쳐서 본다는것이 그만

지도에 눈이 팔려서 앞서가는 차를 보지 못해 충돌할뻔한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다들 운전하실때는 한눈파시면 안됩니다. 그것이 설령 지도라도 말입니다.

...

처음에 네비게이션을 구매하고 매우 신통하다 생각했습니다.

지도는 가끔 확대경을 들고 뚫어져라 바라봐도 찾는 지명을 발견하기 매우 어려운데

이 기기는 목적지를 입력하면 척~하니 길이 다 표시되고, 고속도로 요금이나 주행거리 시간등이

한눈에 표시되니 신통하고 방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예쁜 아가씨가 <과속에 주의하셔요> <졸음운전은 위험합니다.>등등의

친절한 안내까지 목소리로 내어주니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

요 몇일전 같은 일을 하는 담당신부님들과 연수를 떠났습니다.

저는 초행길인데도 불구하고 네비게이션 하나 든든히 믿고 길을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대로 운행을 하다보니

이런... 막다른 길입니다.

부랴부랴 예전에 쓰던 지도를 꺼내들고, 눈을 부릅떠 가면서 겨우겨우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이갔던 신부님들에게

툴툴대며 불평하였습니다.

...

<아니 네비게이션이 좋다고 해서 샀는데, 몇번 쓰고 나니까 얘가 더위에 맛이 갔는지 길도 못찾고>

<이것만 믿다가 아주 큰일날뻔했어요... 예전 지도가 있기에 망정이지, 지도가 더 정확해요 이런...>

...

그런데, 제 푸념을 듣던 후배 신부님이 넌즈시 물어보시는 말씀이

(형, 업데이트는 언제 하셨어요?) -신부들 끼리는 그냥 형님 아우하며 지냅니다.

<업데이트? 그게 먼데?>

(아... 요새 새로 생긴 길이나 진입로가 달라질 경우가 많아서 한달에 한번씩은 전자지도의 데이터를 바꾸어 주어야 해요...)

<그런것도 있었어? 난 몰랐는데... 다 알아서 해주는거 아녔어?>

...

괜시리 툴툴대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습니다.

...

우리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혹시 새로운 길이나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괜하게 툴툴대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보좌신부를 하면서 제일 어려운것을 꼽으라면

잦은 인사이동입니다.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도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잠자리며 식습관까지 바꾸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그때마다, <이 본당 사람들은 왜그래?>라고 속으로 불평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물론 난곡도 처음에는 그랬답니다. 이제는 적응도 다 되었고, 불편한 것들도 살갑게 느껴집니다만...

...

곰곰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자신의 일들이나, 주변 사람들, 혹은 새로운 환경에 대해서

괜시리 툴툴대고 있지는 않은지.

정작 바뀌고 업데이트 되어야 하는것은 타인이나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은 아닌지>말입니다.

...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새 포도주를 헌 가죽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 마태오 복음 9장 17절>

...

이제 주교님께서 명하신 난곡에서의 임기가 다해가고 있습니다.

많은 일을 겪었지만, 난곡에서의 일들은 저에게 소중한 체험이었고

따듯한 교우들의 마음에 저도 많이 감화될 수 있는 축복된 시간이었습니다.

오래된 친구처럼, 또한 오래된 담근술처럼 계속해서 찾고, 머물고 싶은 본당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마음일 뿐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주교님께서 명하시면, 또다른 소임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난곡에 남는것도 행복하고

또다른 소임을 향해 가는것도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예전과는 다르게

<변해야 할 것이 남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난곡에서 특별히 더 잘 깨우칠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러니 교우분들도 이 복된 성당에서

괜히 툴툴대지 말고

변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을 <업데이트>합시다.

...

미사때 뵙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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