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추억의 명승부(5)-이홍렬 마라톤 한국신기록 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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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석 [ryu4337] 쪽지 캡슐

2015-01-05 ㅣ No.11359

때는 1984년 3월18일 동아마라톤 대회…

1974년 문흥주의 한국 마라톤 기록인 2시간 16분 15초가 10년째 요지부동이다.

한국의 마라톤이 뒷걸음질 치는동안  세계 마라톤은 기록에 기록을 단축하여

미국의 살라자르가 2시간8분05초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KBS가 아침9시부터 마라톤을 생중계하며 신기록 갱신을 기원했지만 초반은 양호하게

달리다가 후반에 체력이 밀리면서 신기록 갱신에 실패하는 악순환이 4~5년째 반복이

되는 바람에 이제는 지켜보는 것 조차 버거움을 느꼈다.

 

드디어 한국신기록 갱신의 염원을 담고 동아마라톤 출발 총성이 울렸다.

대학교 2학년을 맞이하며 또한번의 관심을 갖고 TV앞에 앉았지만 이전처럼 후반에 처지는

악순환을 반복할걸로 예상되어 신기록 수립에 대한 기대는 크지않았다.

KBS는 5키로부터 구간기록을 세계기록,한국기록과 비교하여 보여주는데 문흥주의 기록보다

20여초가 뒤져서 나오자 역시나하는 생각이 확신으로 강하게 바뀌웠다.

“코오롱 이동찬 회장이 신기록 세우면 5000만원 준다는데…초반부터 저 모양이니…”

당시 강남의 아파트 한채값이 2500만원 이었으니 두채를 사고 남을만한 거금이었다.

보기도 싫어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으나 일요일 아침이면 무슨 대담프로가 많은지 진짜로

볼만한 프로가 하나도 없어 하는수없이 마라톤으로 돌아오는데 과친구 최홍락에게서

전화가 왔다.

“머라구!영문과 여학생을 솔로팅 시켜준다구?”

“대흥교회 정문에서 만나재!10시50분에!!”

“하필이면 교회냐??”

“독실한 신자인가봐!!교회 안다니면 안사귄대!!”

“알았어!시간맞춰 나갈께!!”

“꼭 나가라!영문과에서 가장 퀸카니께!!”

“퀸가는..무슨 얼어죽을 퀸카!!”

미팅의 전도사인 최홍락이 가끔 솔로팅을 주선하면서 항상 퀸카라고 소개하는데 만나보면

퀸카가 아닌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였다.

“이름은 이형렬!늦지 않게 나가라!!”

“오케바리!!”

 

시간은 어느덧 10시를 넘어 반환점을 돌았는데 한국기록보다 불과 20여초 밖에 뒤지지를

않았고 6명의 건각들이 선두권을 형성하며 활기차게 레이스를 벌였다.
“어쭈!!그래도 예전보다는 낫네!!”

후반으로 가면서 처질줄 알았던 건각들은 더욱 힘을 내서 달렸고 30키로 지점에서 드디어

한국기록을 20초 앞서는등 레이스가 점점 열기를 더했다.

‘어!이러다간 한국기록이 나오겠는데…”

32키로 지나서 선두권은 2명으로 압축되었고 그선수들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등

치열한 속도경쟁을 벌였는데 두선수의 이름은 이홍렬과 최홍락이었다.

“얼씨구! 한선수는 곧 만날 아가씨 이름과 비슷하고 또 한선수는 친구이름과

똑같으이…우째 이런일이….”

초미의 관심사인 35키로 지점의 기록이 나왔는데 한국기록보다 무려 1분이 앞섰다.

“경사났네!경사났어!”

결국 40키로 지점에서 치고 나온 이홍렬선수가 결승점까지 내달려 우승했고 그의

기록은 2시간14분59초 였다.

한국신기록이 무려 10년만에 1분 16초가 단축된 역사적 순간...

이홍렬선수는 방전된듯 땅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고 기자들은 인터뷰하러 구름떼

처럼 모여들었다.

감격적인 장면에 몰입하느라 잊어 먹은 것이 있는듯 웬지 껄쩍지근한 느낌이 들어

시간을 보니 11시20여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참!미팅!이런 일이…”

부리나케 뛰어 대흥교회로 도착하니 이미 예배가 시작됐고 하는수없이 고개를 숙인채

본당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맨뒷자리에 걸치듯 앉았다.

예배를 보는 도중에 여학생을 찾아보았으나 발디딜틈이 없이 꽉찬 신도로 인해

누가누구인지를 알수 없어 찾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했다.

하는수없이 예배를 마친후 정문앞에서 기다렸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한아가씨가

다가오는데 그야말로 보기드문 퀸카였다.아뿔싸!!

“류진석씨세요!!회계학과!”

“영문과 이형렬씨입니까?”

“너무 늦으셨네요!다음에 뵈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총총걸음으로 멀어져가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면서 붙잡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이유자체가 너무 빈약하여 양심상 바라볼수 밖에 없는 나자신이 무척

한심하게 생각되어 이마를 때리며 자책했다.

 

 

*당시 한국신기록의 주인공 이홍렬씨는 8년간 국가대표로 활동하다 은퇴했으며

은퇴후 체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며 2000년부터는

마라톤 무료교실을 개설하여 현재까지 마라톤 전도사로 활동중이다.

중간에 가수로 데뷔하여 레코드 판까지 취입하는등 다방면으로 자신의 재능을

뽐내며 역동적으로 살고 있다.

당시의 이홍렬씨의 한국신기록 갱신을 시발점으로 한국 마라톤은 중흥의 역사를

달렸고 마침내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2000년 2월 도쿄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수립한 한국기록 2시간7분20초가

여전히 깨지지를 않고 있으며 그이후로 한국의 마라톤은 내리막길을 걷고있다.

이기간동안 세계의 마라톤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2014년 9월에 케냐의 키메토가 2시간2분57초라는 엄청난 기록을 수립했다.

이는 100미터를 17초4씩, 42키로를 뛴셈인데 도저히 인간으로 상상이 가질않는

말도 안되는 기록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마라톤은 중흥의 의지도 그때보다 약하고 국민들의 관심과

열정도 그때보다 식은것같아 이봉주의 기록을 갱신하기 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걸로 예상된다.다만 선진국처럼 건강을 위한 레저의 일환으로

 더욱 발전할듯하다.

 

 

*아참!마라톤 때문에 약속시간에 늦었다는 얘기를 듣고 열받은 친구 최홍락이는

이형렬을 찾아가 사과를 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두사람은 결혼하여 잘 삽니다.

어쩐지 두사람이 마라톤에서 경쟁을 하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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