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추억의 명승부(1)-안토니오 이노키VS무하마드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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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석 [ryu4337] 쪽지 캡슐

2014-12-26 ㅣ No.11352

나에게 있어서 스포츠는 인생 그자체이다.

스포츠란 스포츠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고 열광하기 때문에

TV채널은 보통 스포츠 전문 채널에 고정되어 있고 신문도 스포츠면을

제일먼저 구독하며 인터넷 검색도 대부분 스포츠에 관한 것이다.

내가 스포츠를 이리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에는 각본이 없고 인생이 있고

짜릿한 감동이 있고 허망한 좌절이 있기 때문이다.

40여년동안 나에게 충격,감동,좌절,환희등 모든 복잡한 감정을 선사했던

그때의 그스포츠의 현장을 아련한 기억의 편린들을 더듬어 생생하게

엮어 나가련다.

 

1976년 6월26일(토) 13시경

일본 무도관에서 안토니오 이노키와 알리가 12라운드 논타이틀매치를 벌였는데

이는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마징가와 로봇 태권브이의 대결로 비견될정도로

우리들 가슴을 엄청 설레게했다.

학교수업등 듣는등 마는등하고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향하는데 편물상회앞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있었다.

이상하다싶어 사람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니 15인치 흑백 TV에서 알리와 이노키의

경기를 생중계하고 있었는데 두사람은 나란히 링안으로 입장한후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고 링아나운서의 우렁찬(?) 선수소개가 이어졌다..

“누가 이길까?

이노키의 주걱턱이 알리의 주먹에 한방 맞으면 버틸수 있을까?

과연 알리는 이노키의 드롭킥과 코브라 트위스트에 걸리면 살아남을수 있을까?”

당시의 소문으로 알리의 주먹한방은 2톤트럭이 전속력으로 다가와 부딪히는

것과 맘먹는 위력을 갖고 있으며 이노키의 코브라 트위스트에 걸리면 뼈가 반즈음

부서진다는 무시무시한 얘기가 돌았었다.

온각 궁금증에 침마저 삼키는 긴장감마저 느끼는데 드디어 1회전 공이 울렸고

이노키는 시작하자마자 알리에게 도발적으로 뛰어가 발길질 한번한후 그대로

링바닥에 누워버렸고 알리는 그런 이노키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그런 상태로 주욱 5라운드까지 지나가는데 엄청 지루하여 하품마저 터져나왔지만

뭔가 중간에 반전이 있을가싶어 시선을 한시도 수상기에서 뗄수가 없었다.

“끝날때까지 저러다가 마는 것 아냐??”

“설마!!돈이 얼마짜리 경기인데…”

담배를 손가락사이에 낀채 막걸리를 한사발 퍼마신 한아저씨가 짜증섞인 소리로

푸념하자 친구인듯한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기는 중간중간 격전을 벌이는듯하다 끊어지고 이노키와 알리는 서로 들어오라는

제스처를 취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이노키는 누워서 알리는 서서 바라보는데

허비하고 말았다.

결국 12회전 내내 별다른 반전없이 경기는 싱겁게 끝나버렸고 승부도 밋밋하게

무승부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것이 없다라는 해설자의 멘트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할 정도로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큰 경기였다.

당시로서는 무하마드 알리에게 대전료로 600만불(한화65억원)을,이노키에게는 400만불

(44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거액이 들어간 경기여서 돈자체만이라도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그야말로 본전생각이 많이 난 흥행참패의 경기였다.

한마디로 알리는 주먹 6방 날리고 65억원을 이노키는 누워있으면서 44억원을 번 셈이다.

당시의 서울 집한채의 값이 200만원이었으니 5500채의 집을 살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을 걸고

이런 시시한 경기를 벌였다는 셈인데 그야말로 돈지랄도 이런 돈지랄은 없을 것이다.

경기후 알리가 이노키에게 “지구상에서 누워서 돈버는 사람은 창녀와 이노키뿐이다”라며

독설을 퍼부워대자 이노키는 “”누워있는 창녀를 제대로 공략못하는 알리는 고자이다”라고

응수했다.

불세출의 스포츠스타였던 두사람의 인생은 그이후에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1942년 생인 무하마드 알리는 1981년에 은퇴한후 1984년부터 파긴슨병을 앓는등

숱한 병마에 시달리다 최근에 급성 폐렴으로 죽음직전까지 가다 겨우 소생하는등

불운한 말년을 보내고 있으며 1943년 생인 안토니오 이노키는 1989년에 스포츠

문화당을 창당하여 참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998년에 프로레슬링을 공식 은퇴후

이종격투기 사업을 추진하여 짭짤하게 재미를 보다 2014년에는 북한에서 프로레슬링

경기를 개최하는등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1976년도의 두사람의 대결은 시시한 무승부로 끝났지만 그이후의 인생에 있어서는

안토니오 이노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고 말할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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