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죄사함의 조건-조성호 신부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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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4-12-15 ㅣ No.118

다음은, 잘못을 하고서도 그저 말만 해버리면 용서를 받는다고 고해성사를 쉽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꺼리를 주는 글입니다. 이미 고해 성사에서 통회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사제로서 한번쯤 읽어보면 좋은 글입니다.

 

존 오브라이언 신부의 '억만인의 신앙'이란 책 중 일부.-정진석 대주교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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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단지 기계적으로 사제에게 죄를 늘어놓기만 하는 것으로써 죄를 용서받는다면, 고해 성사는 진정 가장 지겨운 형식주의요 허식주의라는 욕을 먹어도 싸다. 또 개과 천선할 희망이 전적으로 달려있는 정신과 마음과 의지의 내적 지향을 무시한다는 욕을 먹어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교회는 고해자가 죄에 대한 통회와 정개의 정이 없으면 아무 죄도 용서받을 수 없음을 가장 똑똑하고 가장 쉽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렇게 선언한다. 어떤 사람이 죄를 모든 사제들과 모든 주교들과 추기경들과 아니 교황에게까지 고백하여 이 모든 성직자들이 모두 그의 죄를 풀어주는 경문을 외웠다 하더라도, 만일 그가 내심으로부터 죄를 통회하고 앞으로 죄를 피하겠다는 정개의 결심이 없다면 정말로 용서받은 죄는 하나도 없다.

 

양심성찰보다 한층 더 중요한 것은 통회의 정을 발하는 것과 정개의 결심이다. 그러므로 트리엔트 공의회는 고해성사를 타당하게 받기에 필요한 조건들을 열거하였는데, 그중에 통회를 첫 자리에 놓았으며, 여기에 정개를 포함했다. "고해자가 할 첫 일인 통회는 이미 범한 죄를 슬퍼하고 미워함이니, 이에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포함된다."(Sess.14,C.4).

 

그런만큼 죄인이 그저 '죄를 사제에게 말해버리는 것'만으로 용서받는다는 생각은 이 성사의 본질을 잘못 전하는 것이다. 만일 고해자가 고백을 하면서 또 기회가 있으면 다시 범죄하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다면 그는 죄사함을 받지 못했을 뿐더러 또 하나의 죄, 즉 성사를 모독한 독성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남의 재산을 훔친 고해자가 그것을 주인에게 갚으라는 고해 신부의 명령을 거부하면 사제는 그의 죄를 용서해 주지도 않는다. 왜? 그는 사죄함을 받기에 타당한 마음의 준비, 곧 정개의 굳은 결심이 없는 때문이며, 이 정개에는 훔친 재산을 주인에게 돌려줄 의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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