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더 이상 낭만은 없다.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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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현엘리야 [star63] 쪽지 캡슐

2001-08-08 ㅣ No.4878

대구를 지났던가요? 혹시 이런 기분 아실런지,,,,,,아무도 없는 열차의 침대칸에서 노란 전등을 켜 놓고 보나까 온통 노란색 일색입니다. 열차 유리창 너머로도 제 공간의 불빛이 반사되어서 밝도 노란 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도심지를 완전히 벗어나기 까지는 비켜가는 야경을 바라보는 기분,,,그러다가 한동안은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밖이 노출된 것이 아니라 제가 세상에 그대로 노출된 느낌,,그러니까 제가 확보하고 있는,,아마도 1.5평 정도되는 공간에서 차지하는 저의 모든 것이 그대로 노출되는 느낌,,제가 아주 왜소하다고도 느껴지고 그러다가도 제가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정말로 주마등같이 옛날 기억들이 나기도 하고,,,갑자기 머릿속으로 공상 소설을 쓰기도 하고,,,,그러다 빛을 만나면 저는 감추어지고 세상이 저에게 노출되는 것이지요. 역에 도착할 즈음이면 조금씩 빛이 반사되고 역사에는 어김없이 가로등 불빛과 여기저기 뜸한 나무 벤치, 그리고 조그맣게 조명되는 역사. 한 사람씩 혹은 가족들이 덜 깬 잠을 떨치고 역사쪽을 걸어가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다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어디를 향해서 가는 것일까요,,

 

제가 종교를 가지고 나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들을 정해진 위치에 정확하게 내려주는 열차와 그 열차에 실려있는 저를 비롯한 많을 사람들,,,기차는 어린 시절부터 왠지 정해진 약속을 꼭 지키는 어떤 생명체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다른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열차는 왠만하면 저를 원하는 목적지에 데려다 준 것 같습니다. 요즘의 비행기는 어림이 없지요. , 정해진 비행기 출발 시간보다 훨씬 늦게 출발하는 것은 당연하고,그러면서도 우리가 늦으면 절대 탈 수가 없지요. 그리고 비행기는 배웅도 참 어렵습니다. 우리 정서에는 안 맞는 교통수단이지요. 기차의 너그러움에 비하면 버스도 비할 바가 아닌 것은 마찬가지고요.  택시는 더 말할 것도 없구요. 모두가 넉넉함과 기다려주는 여유, 그리고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기차는 기다려줍니다. 사실 정확한 시간에 출발하지만,,,거의 열차시간에만 플랫폼에 들어서면 뛰어서라도 탈 수 있었지요. 그리고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열차안까지는 배웅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표가 없으면 입장표만 가지고 기차를 타고 그리고 아저씨만 잘 만나면 벌금도 안 내고 목적지까지 갈 수가 있었지요. 비록 편안한 자리는 아니지만 일단 기차에만 타면 기차는 누가 그 안에 있건, 어떤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건 정확한 위치에 정확한 시간에 우리를 배달해 주곤 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열차가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년 365일 열차는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티켓을 받아 그 열차에 정해진 시간에 오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은 정확하게 우리를 데려다 주십니다. 물론 내린 역에서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요. 그 일상에서 우리는 다시 우리를 데려다 주신 주님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 경험으로는 저는 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를 인도하신 주님을 저가 처한 위치에서 마음대로 해석하고 저를 뽐내고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그래도 주님의 열차는 오늘도 우리를 아무때나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티켓을 구하기만 하면,,,그 열차는 우리를 인도하지요,,

 

열차에 비가 띄움띄움 내리고 있었습니다. 조금씩 졸리고,,,,,,,어떻게 잠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잠은 그리 편하게 자지는 못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잠자리는 그리 기대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비가 와서인지 습기가 계속 괴롭히고, 에어컨은 공간이 너무 좁아서 습기와 온도를 적절하게 조절하기에는 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좀 자기는 했습니다. 아마도 서울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5시 좀 넘었으니까,,,2시간 정도 잤을까요?

 

"아저씨,,,,,일어나세요,,,,,서울역입니다. 아저씨,,,,,,,," 처음 침대칸에 들어설 때 뵜던 아저씨가 방방을 돌면서 사람들을 깨우고 있습니다. 기분 좋은 순간이었지요,,,,,

 

아직 잠이 덜 깨서,,,,대충 옷을 입고,,,,(사실 침대 아래칸은 덜 흔들리는지늠 몰라도 윗칸보다는 좁아서 옷을 갈아 입기가 좀 어렵습니다. 저는 경험상 다음에는 윗쪽 침대를 선택해볼까 합니다. 층고도 훨씬 높고, 그리고 공간도 넓은 편입니다. 물론 윗칸이라 가격도 싸고요,,,,,),,,,,,,,,,,,,사람 좋아 뵈는 아저씨는 입구에 서서 사람들이 나올 때면 "기차를 이용해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계속합니다.서울역 대합실로 나갑니다.

 

서울은 역시 서울이었습니다. 그 시간에,,,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날은 벌써,,,밝아오고,,,,

 

어제밤부터의 주책을 무려 2주간을 넘기면서 올렸군요,,,,아무튼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밤 열차 침대칸을 혼자 타고 오면서,,,제가 지금까지는 전혀 가져보지 못한 생각,,그리고 분명 저는 혼자 열차를 타고, 그것도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공간을 이동해서 서울에 있었지만,,,저는 분명히 누군가와 동행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의 낭만이 있을까요? 아침을 맞으면서 약간은 술이 덜 깬,,,그러나 아주 정신은 맑은,,,,

 

횡설수설,,,,감사합니다.

 

                                       강재현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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