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old

성탄의 역사적 기원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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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3-12-24 ㅣ No.32

1.예수성탄 대축일 (라틴어 Sollemni-tas in Nativitate Domini. 영어 Christmas)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전통적인 기념일이며 흔히 `크리스마스’로 불립니다.

아르메니아 교회들을 제외하고 모든 가톨릭 교회와 대부분의 그리스 정교회,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이 기념일을 12월 25일에 지킵니다.

그러나 예수의 실질적인 탄생일에 관하여 구약전승과 신약성서에는 기록된 바가 없고,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의 날짜나 교회에서 성탄의 의식(儀式)을 실제로 시작한 시기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2세기 말경에 알레산드리아의 성 글레멘스는 5월 20일의 특별한 축일에 관해 언급하고 있으나 4세기 말까지는 기념일의 의식이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336년, 성탄 축일을 12월 25일로 지키는 관습이 서방교회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이는 로마인들의 이교적인 국가 축제일이었던 `무적의 태양의 탄신일’(Natale Solis Ivicti)을 그리스도교화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에서는 274년, 아우렐리아누스(Aure-lianus) 황제 때부터 태양을 최고신으로 공경하여 태양신의 신전을 건립하고 그 건립일을 축제일로 지정했던 것입니다. 이 태양신에 그리스도를 대치시켜 354년 로마의 리베리오 주교는 이날을 성탄으로 판정하여 그해 로마 축일표에 기록했고, 5세기초에 이 날을 예수성탄 축일로 정식 선포한 것입니다. 특히 교회는 4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神性)을 부정하는 이단 아리아니즘에 대항하여 성탄축제를 통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고백하고 정통교리를 고수하고자 하였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 동방박사들의 경배, 세례자 요한에 의한 그리스도의 세례 등을 공동으로 기념하기 위한 특별한 예배의식을 채택하여 처음에는 이러한 의식이 `주의 공현 축일’(1월 6일)에 거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12월 25일의 성탄 축일이 서방교회에서 동방교회로 퍼져 나가 안티오키아에서는 386년 그리스도의 신성을 반대하는 이단에 맞서 지켜졌고, 콘스탄티노플· 소아시아로 전해져 5세기말에는 대부분이 12월 25일에 예수성탄을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와 예루살렘은 6세기에 네스토리우스주의와의 논쟁과 관련되어 지켜졌습니다. 단 아르메니아 교회는 오늘날까지 1월 6일을 성탄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성탄 축일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외에 예수의 탄생을 단순히 기념한다는 의미보다 연중 다른 기념일과 성인들의 축일에서처럼 완전한 인격과 업적을 축하합니다. 즉 이 축일은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본질을 갖고 계셨으며 예수는 이 세상에 주님으로서, 심판자로서 오셨고, 땅과 하늘을 화해시켰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 축일의 성격은 기쁨과 감사의 축제입니다. 중세에는 예수를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보내 준 중개자라기보다는, 인간 가운데 나타난 영원한 하느님의 아들로 공경했기에 부활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기도 하였습니다.

서방교회 전례에서는 이 날 밤중과 새벽, 본일 낮의 세 대의 미사를 드립니다. 이는 5세기의 교황 순회미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카롤링거왕조시대에 로마 이외 지역에서도 행해지다가 13세기 이래로 모든 사제는 이 날 세 대의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탄축제가 시작되던 4세기에는 로마에서도 다른 축일과 같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단 한 번의 미사가 성대하게 이루어졌었다(지금의 성탄 낮미사). 그러나 여기에 부활 성야의 축제와 예루살렘의 성탄축제를 모방하여 밤중 미사가 추가되었습니다. 즉 예루살렘에서 한밤중에 베들레헴의 성탄동굴에서 드리던 미사를 모방하여 로마에서도 마리아 대성전에 베들레헴 구유의 모형을 갖다 놓고 성탄 밤중에 미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 두 번째 미사는 교황이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도중, 로마에 살던 그리스인들 구역인 팔라틴(Palatin)언덕 기슭의 성 아나스타시아 소성당에 들러 미사를 드리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 이날은 동방교회의 유명한 성녀 아나스타시아의 치명 축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미사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를 덧붙여 봉헌하고 있습니다.

밤미사는 구유 경배 예절을 하면서 성자께서 성부로부터 영원히 탄생하심을 경배하고,

새벽미사는 성자께서 영원으로부터 우리가 사는 시간과 공간 사이에 육체를 가지고 성모 마리아의 몸에서 베들레헴의 구유에 태어나심을 경배합니다. 이것을 ’빛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낮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요, 구원자로 오심을 경배합니다.

 

2.성탄의 의미

 

예수님의 오심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외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심, 神이 한 아기가 되심은 인간의 이해력을 벗어나는 신비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우리 지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이 신비를 우리 가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우리 또한 필연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열린 마음, 겸손한 마음, 사랑의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하고, 오시는 예수님을 향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신비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토록 세상과 사람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외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이런 불가능한 선물을 받는 우리는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감사하며 그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오심의 첫째 의미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오심 그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내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 당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이루신 아버지의 뜻으로부터, 곧 그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분의 부활로부터 우리는 예수님 오심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다다를 때까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곧 구세주,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립니다. 그래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될 때, 비로소 예수님 오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철저히 위하는 삶을 사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 오심의 의미를 되살릴 수 있습니다.

 

오심은 마중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오심은 그에 맞는 준비와 영접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사이로, 우리 마음속으로 오십니다. 우리는 이에 맞게 예수님을 맞아 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영접하느냐에 따라 예수님의 오심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동쪽에서 오는데, 서쪽으로 또는 남쪽으로 마중 가서는 안 됩니다. 배를 타고 오는데 비행장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오시는 분의 신분과 그 오심의 방법에 맞게 준비와 영접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낭만이 아닙니다.

성탄 구유는 낭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비천하게 비참하게, 가장 밑바닥 인생으로, 우리보다도 못한 인생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철저한 비움과 철저한 포기입니다. 우리는 한 번 가진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아들일 자리가 우선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사이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포기할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또한 맞아들인 예수님에 따라 우리의 생활을 펼쳐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섬김의 생활이고 사랑의 생활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에게 진정한 오심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평화의 오심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시려고 오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나와 하느님 사이에, 나와 나 사이에, 나와 너 사이에, 우리와 너희 사이에, 먹이통에 눕힌 아기 예수님이 계실 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계실 때, 진정한 평화가 주어집니다. 우리 자신이 오신 예수님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분처럼 살아갈 때, 예수님 오심의 의미가 우리에게서도 되살려지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故임승필 신부님께서 2002년에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강의하신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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