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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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1-07-24 ㅣ No.25

 +입당송  

주님, 당신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고 죄를 범한 저희에게 당신께서 하신 모든 일은 정의로우신 처사시었나이다. 그러하오니 이제는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드러내시고, 저희에게 당신의 풍성한 자비를 베푸소서.

 

 

 +본기도

주 하느님, 용서와 자비로 전능을 크게 드러내시니, 주님의 은총을 끊임없이 내려 주시어, 약속하신 목적지로 달리고 있는 저희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말씀길라잡이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당신 백성을 이끄신다. 바다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노래를 불러 주님을 찬양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발로 바다를 건너 해방되었다는 이 이야기는 유다인들이 파스카 축제 때에 봉독했던 성서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킨 거센 바닷물은 훗날 세례의 물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의 이 해방의 사건을 그리스도의 파스카와 세례를 통하여 이룩되는 세상 모든 민족들의 해방을 미리 보여 준 상징적 사건으로 보았다. 그래서 교회가 부활 성야 전례에서 늘 이 이야기를 읽는 것이다(제1독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형제가 되라고 사람들을 부르신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여 그 가족의 한 사람이 된다. 영적인 가족이 피로 맺어진 가족을 앞지른다(복음).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걸어갔다.>

☞ 출애굽기의 말씀입니다. 14,21-15.1ㄱ

 

그 무렵 모세가 팔을 바다로 뻗치자,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바람을 일으켜 바닷물을 뒤로 밀어붙여 바다를 말리셨다.

바다가 갈라지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걸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이집트인들이 뒤쫓아왔다. 파라오의 말과 병거와 기병이 모두 그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섰다.

새벽녘에 주님께서 불과 구름 기둥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자 이집트 군대는 갈팡질팡하였다. 또한 주님께서는 그들의 병거 바퀴들을 얽어 놓아 꼼짝도 못 하게 하셨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버려 두고 도망 가자. 주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 편이 되어 우리 이집트 군대를 치신다."하고 소리쳤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이집트인들과 그들의 병거와 기병들 위에 물이 도로 덮이게 네 팔을 바다 위로 뻗쳐라."

모세는 팔을 바다 위로 뻗쳤다. 날이 새자 바닷물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집트인들은 물결을 무릅쓰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주님께서 이집트인들을 바닷속에 처넣으셨다.

물결이 도로 밀려오며 병거와 기병을 모두 삼켜 버렸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바다에 들어섰던 파라오의 군대는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밝고 건너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그 날, 주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이집트 군대로부터 건지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인들이 해변에서 죽어있는 것을 보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께서 큰 팔을 펴시어 이집트인들을 치시는 것을 보고 주님을 두려워하며 주님과 그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다.

그제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러 주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를 생략하고 바로 화답송을 한다.

 

 

 

 

◎ 주님을 찬양하세, 그지없이 높으신 분.

○ 노하신 입김에 물이 몰려들어 물결은 둑처럼 일어섰고, 바닷속 깊은 데서 물이 엉겼도다. 원수는 말하였도다. "나는 쫓아가 붙들어 약탈해 나누어 가지리라. 나는 칼을 뽑아 이 손으로 쳐부수리라."◎

○ 그러나 당신의 입김으로, 바닷물은 저들을 덮어, 저들을 거센 물결 속에 납덩이처럼 가라앉혔나이다. 당신께서 바른팔을 뻗치셨더니. 땅은 그들을 삼켜 버렸나이다. ◎

○ 당신의 유산으로 주신 산으로, 당신께서 머무시려고 마련하신 그 산으로 그들을 이끄시어, 당신 몸소 정하신 성소에 그들을 심으셨나이다. ◎

 

 

 

 

 

 

 

◎ 알렐루야.

 

○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키리니,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실 것이며, 아버지와 내가 그를 찾아가리라.

 

◎ 알렐루야.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6-50

 

예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와 말씀을 나눌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 분들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밖에 서서 찾고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에수께서는 말을 전해 준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오늘 복음은 두가지 측면에서 묵상할수 있으면서 하나를 꼭 염두해 두어야 한다.

이 대목은 영원한 당신의 영적 가치를 가르키기 위한 화두에 해당한다.

자칫 어머니이신 성모님에 대한 민망스러움으로 오해 되어서는 안되겠다.

예수님은 복음서 여러곳에서 영적 가치를 가르키기 위해 화두를 쓰셨다.

그 예로 나에게는 너희에게 모르는 양식이 있다고 하시자 제자들은 선생님께 누가 우리가 없는 사이에 먹을 것을 드렸나?하고 궁금해 하자 바로 영원한 양식이란 당신과 당신이 하신 말씀임을 설명하신다.

이런 구조의 강조법은 예수님의 지혜로운 교육방법이다.

 

오늘 복음에서도 역시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요 형제인가? 질문하시고

 

이 관계를 영적인  가족에게 까지 그 영역을 확장 상승시키고 계신다.

 

먼저 예수님의 측면에서 묵상해 보면

 

예수님은 바로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고 사랑하는 이에 대해 마치 당신과 탯줄로 연결된 부모의 관계처럼 긴밀한 영적인 친밀함을 갖게 됨을 인식시켜 주시고 있다.

 

누가 내어머니인가?

 

어머니는 아들 없이는 아들은 어머니 없이 생각할수 없는 개념이다.

 

즉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늘 아들이 있고 아들의 생명은 어머니가 주신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주님께서 사신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기도를 할때 먼 옥황상제이신 하늘나라에 계신 하느님께 하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서 살아계신는 주님 바로 옆에 계신 하느님께 속삭이는 것이다.

 

마치 태교를 하는 어머니가 뱃속의 아이에게 소근 대듯이........

 

그리고 어머니와 뱃속의 아이가 함께 느끼고 살아가듯이 무슨 슬픈일이나 고통이 오면 함께 아파하게 된다.

 

우리가 고통과 실망을 당했을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부부가 같은 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났다.

 

의식을 차려보니 나는 팔이 부러졌다.

 

순간 공포심에 휩싸여 주위를 돌아보았다. 남편을 황급히 찾았다.

 

남편은 중환자 실에 옮겨졌다. 중상이다. ..........

 

팔이 부러진 아내가 중환자인 남편앞에서 자신의 팔이 부러졌다고 울수 있겠는가?

 

우리의 영적상태도 이렇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힘들고 실망하고 있다면 예수님은그 순간 사랑이 많으신 그분은 더 큰 느낌으로 고통을 함께하신다.

 

가장 어리석은 기도가 이런단어를 쓰는 것이다. 주님 나의 고통을 나의 십자가를 나의 번민을 당신이 아십니까? 없애주소서1

 

잘못된 점에 밑줄은 나의! 당신이! 아십니까?

 

기도를 많이 할수록 이점을 모른다면 왜 기도가 안들어 주시나 지치게 될것이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 중환자 남편에게 자신의 타박상을 낫게 해달라고 칭얼대는 철없는 부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성모상에는 그 성모상을 만든 작가의 어머니의 모습이 녹아들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성모님의 모습은 우리의 어머니의 모습이며 우리의 모습이 성모님의 모습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 강론을 듣고 있는 자녀을 둔 어머니는 자신이 성모님이라는 것을 얼마나 인식하며 자신의 성모님 다움을 나타내는가?

 

가정에서 어머니의 권위는 바로 야훼하느님이 보장하신근 권위이다.

 

남편에 대한 그릇된 복종 자식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없나?

 

남편을 대할때 성모님의 그 모습이 되려 얼마나 노력하였는가?

 

모든 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성모님처럼 바라보고 자식들도 그렇게 그리고 본인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야 성가정이 될수 있다.

 

이젠 성모님께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모님이 실제로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그런 인식을 가져야 된다고 말해야 한다.

 

말안드는 자녀에게 "누가 너의 어머니인가?" 내가 너에게 누구인가? 질문해 보라

 

우리 사회는 성모님같은 분들이 아니고 여러분 성모님이 가정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잉태한체 생활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 강론을 듣는 어머니들이여 고개를 들어 미사보를 쓴 여러분의 모습이 성모님이 모습임을 아십시오.

 

그리고 자신있게 가족을 대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에서 성모님은 여러분임을 말하십시오.

 

이렇게 "누가 내 어머니요? 내 자식들인가?"

 

여러분의 중요성을 말하십시오.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가 드리는 이 제사를 받아들이시어, 이 제사를 통하여 온갖 복을 받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주님의 종에게 내리신 말씀을 다시 생각하소서. 이 몸에게 희망을 주신 그 말씀을, 괴로울 제 저의 위로는 이것이니이다.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하는 우리는 주님안에서 한 형제이며 자매입니다. 아버지 하느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구원에 함께하고 있는 ’형제, 자매’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 안에서 이웃을 한 형제 자매로 여기며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까?

 

 

 

주님, 천상 신비로 저희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어, 그리스도의 죽음을 전하며 그 수난에 참여하는 저희가 그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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