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의 방-old

성모송 한번의 막강한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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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7-05-28 ㅣ No.56

성모송 한번의 막강한 파워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수백만 가톨릭 신자들이 때때로 성모송을 바친다.

어떤 이는 말 뜻도 제대로 생각 않고 성급히 외운다.
아래의 글이 이런 이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이들은 하느님의 어머니께 큰 기쁨을 드리고 그들이 얻고자 기도하는 은혜를 입게 될 것이다.

정성껏 바치는 한 번의 성모송은 성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드리며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큰 은총을 얻게 될 것이다.

정성껏 바친 한 번의 성모송은 생각없이 외운 천 번의 성모송 보다 더 많은 은총을 우리에게 얻어 준다.  

성모송은 마치 금이 묻혀 있는 금광과 같다.

언제나 금을 캘 수 있고 결코 바닥이 나지 않는다.  

성모송을 정성껏 바치는 것이 어려운가?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성모송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하면 문제가 해결 될 것이다.

성 예로니모는 "성모송에 감추어진 진실은 참으로 훌륭하고 엄청난 것이어서 인간의 지혜뿐 아니라 천사들조차도 온전히 이해 할 수 없다." 고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들 중 가장 지혜롭고, 성인들 중 가장 박식한 성인이라고 교황 레오 13세께서 찬사를 아끼지 않은,

신학의 왕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40일 동안 로마에 머물면서 매일 큰 기쁨을 가지고 성모송에 관하여 가르쳤다.
박식하고 거룩한 예수회의 에프 수아레즈 신부는 자신의 평생 노고의 소산, 심혈을 기울여 저작한 자신의 모든 저서들을 자신의 임종시, 혼신을 다하여, 열정으로 바쳐진 단 한 번의 성모송의 은혜와 기꺼이바꾸겠다고 선언하였다.

성모님을 깊이 사랑했던 성 멛틸다는 성모님의 영광을 위하여 아름다운 기도문을 만들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그녀에게 나타나셨다.

성모님의 가슴에는 금빛 찬란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성모님께서는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딸아, 네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구나. 그러나 그 어떤 기도도 성모송보다 나에게 더 큰 기쁨을 가져다 줄 수는 없단다."

어떤 사람이 천천히 성모송을 바치며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았다.

복되신 동정녀께서 그 사람에게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셔서 그가 가장 거룩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임종의 날짜와 시간을 알려 주셨다.

그가 죽은 후, 아름다운 흰 백합이 그의 입에서 피어나면서 꽃잎마다 "성모송"이 새겨져 있었다.
세쟈리우스 사람에게도 꼭 같은 일이 일어났다.

겸손하고 거룩한 한 수사가 어느 수도원에 살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희박해진 그는 한가지 기도를 제외하곤 모든 기도를 다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가 기억하는 기도는 성모송이었다.

그는 하루 종일 그 기도를 외우며 봉헌하였다.  

수사가 죽은 후, 그의 무덤에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그 나무에서 잎이 돋아 나고 모든 잎에는 성모송이 새겨져 있었다.

이 아름다운 실화들은 성모님께 바쳐 드리는 공경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열심히 정성을 다하여 바친 성모송의 막강한 파워를 암시하고 있다.

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께 예수님의 잉태를 알려 주신 그 날,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아들의 어머니가 되시는 그 날,

그 순간, 마리아의 영혼이 은총과 기쁨으로 가득한,

그 순간의 대천사 가브리엘의 말씀을 그대로 꼭 같이 우리가 반복하는 것이다.

*   *   *   *   *


이제 우리가 성모송 한 번을 바칠 때마다

그 모든 은총과 기쁨을 성모님께 다시 바쳐 드리게 되는 것이며,

성모님께서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우리의 봉헌을 받으시고,

그 답례로 우리에게 그 기쁨을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한 번은 우리 주님께서 아씨씨의 성 프란치스코에게 무엇인가 달라고 요청하셨다. 성인이 대답하였다.

"사랑하올 주님, 제가 이미 주님께 저의 모든 것을 다 드렸기에 아무 것도 더 드릴 것이 없나이다." 예수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프란치스코야, 나에게 바친 것을 또다시 반복해서 바쳐 다오.

그 때마다 나에게 똑같은 기쁨을 준단다."

그러니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매번 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말씀하시던 그 때의 기쁨과 환희를 꼭 같이

우리에게서 받으시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복되신 어머니께 모든 위엄과, 위대하심과, 거룩하심과 당신의 완전하신 어머니가 되시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또한 모든 감미로우심과, 사랑과, 부드러우심과, 그분을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로 모시기에 충분한 모든 애정을 내려 주셨던 것이다.

 

마리아는 진실로 참되신 우리의 어머니이시다. 그 분의 자녀들로써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그 분께 달아 들며 도움을 청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어찌 마리아 그 분의 무한하신  사랑의 품으로 즉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성 베르나르도와 다른 많은 성인들께서 말하기를,

마리아께서 지상의 당신의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거절하신 일이 절대로 없다고, 그런 일은 절대로, 언제, 어디서도, 들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가장 위안이 되는 이 진리를 왜 깨닫지 못할까?

하느님의 감미로우신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사랑과 위로를 주시는데 왜 우리가 그것을 거절할까?  

도움과 위로를 빼앗아 가는 무관심 때문일까?

마리아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이 지금 지상에서 행복하게 되는 길이며,

후세에 천국에서 행복하게 되는 길임을 왜 모를까?

휴 래머 박사는 가톨릭 교회에 강한 편견을 가진 완고한 개신교 신자였다.

어느 날 그는 성모송과 그에 대한 설명을 읽게 되었다.

그는 그것에 대해 대단한 매력을 느끼고 그 후로는 매일 성모송을 바치게 되었다.

그에게서 점차 반-가톨릭적인 악의에 찬 편견은 무감각하게 되었고

결국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되었고 브레슬로의 가톨릭 신학자가 되었다.

어느 신부가 어떤 사람의 임종의 침상에 초대되어 갔는데

그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에 절망상태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완강하게 고해하기를 거절하였다.

신부님은 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성모송을 한 번 바칠 것을 요청하였다.  

는 간절하게 성모송을 한 번 바친 후, 고해 성사를 보고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영국의 한 본당 신부는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어느 개신교 신자를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천주교로 개종을 원한다는 이 사람을 찾아가 물었다.

"혹시 성당에 가본 일이나, 어떤 가톨릭 신자와 대화를 나누었거나,

가톨릭에 관한 책을 읽으신 일이 있나요?"

"아니요, 아니예요. 기억 나는 것이라곤 어렸을 때 옆집 가톨릭 신자 소녀에게서 성모송을 배워 매일 저녁 바치던 것 밖에는 기억이 않나요."

그녀는 죽기 전에 영세를 받았고,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도 영세를 받는 것도 보았다.  

성녀 젤뚜루다는 "계시" 라는 그녀의 책에서 아래와 같이 알려 주고 있다.

즉 하느님께서 어느 성인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하여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

그 성인께서 받은 특별한 은혜 중 큰 몫을 나누어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복되신 성모님께 내려 주신 이루 다 열거 할 수 없는 모든 은혜들을 생각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성모송을 바치면 우리가 못 받을 은혜가 무엇이랴?

                                                                                                                

-스피맅 데일리(Spirit Daily)에서,
-한 아오스팅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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