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주님 수난 성지주일(나해) 마르 1,15-39; '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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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4-03-10 ㅣ No.5703

주님 수난 성지주일(나해) 마르 1,15-39; '24/03/24

 

 

예전에 성모발현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성모발현지를 방문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성모님께서 어린아이들에게 발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모님께서 대통령이나 임금이나 정치 지도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 세례 받아. 그리고 너를 따르는 사람들 모두 세례 줘!’라고 하셨다면, 금방 선교가 이루어졌을 텐데. 아니면, 부자들에게 나타나 너 가진 돈 뚝 떼어서 가난한 이들 구제에 써. 사회복지시설 지어서 어려운 사람들 받아주고 편안하게 살게 해 줘!’ 라고 하셨다면,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큰 혜택이 돌아갔을 텐데. 예수님과 성모님의 방법과 처사가 아쉽다고나 할까, 아니면 세상 물정을 몰라 어리석다고나 할까? 그런데 우리가 그런 분들을 믿고 청하고 있다니, 우리가 어리석은 것인지, 아니면 그분들이 정말 잘못된 것인지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성모님은 왜 아무 힘도 없고, 혼자 힘으로는 커다란 영향도 끼칠 수도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나셨습니까?’

 

역사적으로 돌아 볼 때, 지금의 터키 지역에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주 무대인 이 교회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어, 로마의 권세가 펼쳐지는 모든 나라와 지역의 사람들에게 다 세례를 주어, 그리스도교가 커다란 교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민족의 침입으로 동로마제국의 터키 지역은 허물어졌고, 그에 따라 그 지역 그리스도교도 없어졌습니다. 권력에 의한 집단개종은 다른 더 큰 권력에 의해 또 집단개종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쟁 이후 복구시기에, 성당에서 밀가루를 얻어 먹으며 신자가 되었던, 일명 밀가루 신자들은 밀가루가 떨어지면서 더 이상 성당에 나오지 않습니다. 돈과 현세적인 필요를 위해 찾은 종교는, 신앙이 되지 못하고, 또 다른 현세적 필요를 찾아 표류합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올바르고 적절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교회가 패망과 허망한 결과를 또다시 겪지 않게 될지를 골몰하며 몸부림을 칠 뿐입니다. 외적인 힘과 현세적인 필요가 아닌, 하느님 사랑체험과 내적 회심에 의한 굳건한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이나 정치 지도자들의 아들이나 부자들의 아들로 태어나시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6-8)

 

예수님께서는 탄생하신 후에, 헤로데 왕이나 산헤드린 등의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사회에서 죄인으로 낙인 찍히고 버림받은 목동들과 동방에서 온 이방인들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꿈나무나 유망주나 실력자나 떠오르는 샛별이 아니라, 무지렁이 어부들을 제자로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십자가에서 못 박는 배은망덕한 유다인들에게 일갈하시거나, 권능의 힘을 펼치시어 한순간에 제압하시며, 주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실 수 있으셨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실패자처럼, 무능력자처럼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사람들에게 기적을 통해 가르치고, 벌도 주시며 당근과 채찍으로 훈육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구하시기 위해,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자신이 대신 죽어주는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어처구니없는 방법입니까!

 

태어나게 해 달라고 청한 적도 없는데 사랑으로 우리를 세상에 내주시고, 달란 적도 없는데 사랑으로 생명과 이웃과 자연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선물로 주십니다. 급기야는 지금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더 많이 세속적인 것을 얻고 싶어 몸부림치느라 생긴 폐해를 우리는 알아차리지도 못하는데, 주님께서는 필요성도 못 느끼는 철부지 우리들을 위해 온 가슴으로 안아주시고 메워주시고 지워주시고 갚아 주시려 대신 생명을 바치십니다. 우리와는 너무나도 다른 사랑의 방식 때문에, 사랑이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성모님도 당대 정치, 종교, 사회, 문화 지도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한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당신의 뜻을 이룰 수 있으셨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쓸 수 있는 모든 재원과 자원을 다 동원하여, 가능하면 한 번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최고의 효율적인 결과를 얻도록 기획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참으로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주위에 이렇다 할 영향력을 끼치지도 못하는 별 볼 일 없는 이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의 방법과 하느님의 방법은 너무나 차이가 나 보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너무나 큰 차이가 나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입신양명과 우리가 펼치고자 하는 것을 주님께서 밀어주시고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급기야 우리는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신 주 하느님을 우리 육신 생명과 사회적 삶의 후원자요 담보자로 격하시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하는 일이 잘 풀려나가면 하느님께서 내 원과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생각하고, 잘 풀려나가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내 원과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신관을 가지고 살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잘되면 자신이 잘 된 것에만 의기양양하고 파티는 열지언정,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거나, 그에 보답하는 의미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사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잘 안되면, 하느님께서는 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자기를 도와주시지 않느냐고 원망을 하거나,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하느님은 필요 없다.’라고 까지 선언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나 하느님 구원사업의 협조자이기를 원치 않거나 전혀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아예,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시기를 바라시는지?’, ‘나를 통해 무엇을 하시고자 하시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어떤 신자들은 신앙과 영성이나 교리, 교회 정신을 언급하면, 우스갯소리로 치부해 버립니다.

 

교회의 정신이나 교회법은 존중하고 따라야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결혼하여 잘 살려고 하는 것을 가로막는 웬 장애물인가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고, 항변마저 합니다. 성직자 수도자 성소를 이야기하면, 어린아이들조차 결혼하고 싶어요.’ 하며, 아예 긍정적인 응답은커녕 진지한 반응조차 드러내지 않습니다. 주일학교보다는 학원을, 기도와 성사와 성실하고 충실한 신앙생활보다는 일류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 더 급하고, 더 중요하며, 오히려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 때문에 주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 필요하지, 좋은 천주교 학생과 좋은 천주교 직장인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봉사()() 권하거나 희생을 요청하면, 더 바쁘고, 더 급하고, 더 현세적으로 필요한 일들에 기여하기 위하여 돌아서 버립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마음에 담고, 일상에서 실현하며, 주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우리 앞길을 펼쳐주고 보장해줄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주 예수님은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십자가상에서 내려오실 수 없고, 예수님을 탐욕과 시기와 질투로 묶고 있는 그 못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기만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목말라하시며 부르짖으십니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헤아리기로 합시다.

오늘 우리를 향해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실현하여, 거룩해지기로 합시다.

오늘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호소에 응답하여, 이 땅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킵시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이사 50,5)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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