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김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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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석 [ryu4337] 쪽지 캡슐

2014-11-16 ㅣ No.11334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970년 겨울인걸로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동네에는 텔레비죤이 한대뿐이어서 폭설임에도 불구하고

십수명의 사람들이 재병이네 안방으로 모여들었다.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귀신드라마를 보는데 주인공이 너무나

예쁘면서도 무서웠다.

자그마한 체구에 자그마한 눈을 지그시 감으며 사람의 머리에

입을 갖다대며 피를 빨아먹는 장면에서는 내머리의 뇌가 빨리는

듯한 공포마저 들었다.

발이 폭폭 빠지는 눈길을 걸으며 집을 향하면서도 밀려오는 공포에

주위를 수시로 살폈고 나무에 펄럭이는 비닐을 귀신이 입던 소복으로

착각해 괴성을 질렀다.

며칠간 밤마다 그녀의 무서운 눈빛이 꿈속에 나타나 가위눌렸고

그녀의 표독스러운 미소에 소리치며 잠을 깼다.

그렇게 그녀와의 첫만남은 충격적이었고 강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무서운 귀신으로 나온 여자가 김자옥이라는 배우임을

알게되었고 청순가련형으로 변신하면서 심금을 울리는 그녀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어갔다.

자그마한 눈으로 웃음지며 자연스럽게 나오는 애교는 나의 마음을

마구 흔들었고 애틋한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애간장마저 후벼팠다.

그러던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에 최백호라는 가수와 결혼을 발표할때는

충격과 경악에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절망감에 빠졌다.

그녀가 내곁을 떠나는 슬픔도 컸지만 그많은 남자중에 못생긴 최백호씨랑

결혼하는 것에 대한 낙심이 더컸었다.

그리고 낙심은 열병으로 찾아왔고 그것은 상당기간 나를 괴롭혔지만

언제인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스러져갔다.

 

무심한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김자옥씨도 늙어갔고 사춘기때의 추억으로

치부하며 처자식들을 먹여살리려 동분서주할 무렵…

그녀가 공주는 외로워라는 노래를 들고 내앞에 나타났다.

여전히 건재하다라는 생각과 곱게 나이먹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교차되며

흐믓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공주병을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베시시 웃는

모습에서는 추억의 그때로 잠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던 2005년 이맘때즈음…

여의도 MBC 옆길을 거닐다 우연히 김자옥씨와 마주친적이 있었다.

콩콩뛰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사인을 부탁했더니 특유의 웃는 표정을

지으며 혼쾌히 응해주었다.

“어렸을 때 잠을 못 이룰정도로 좋아했습니다.”

“그래요?!!나 때문에 잠 못 이루신 분이 여기에도 계시네!!

지금은 잘 주무시죠??”

“예?그럼유 푸하하하!!옛날 그대로 이십니다”

“무슨 말씀을요!!”

종종 걸음을 하며 방송국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간의 숙원이 이뤄진듯 기쁘면서도 점점 보이지않는 그옛날 그녀의

모습에 지나가는 세월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막장 드라마에서 못된 시어머니 역할을 하다가 이순재 선생님과 황혼의

로맨스를 만끽하다 가끔 재혼한 남편과 행복한 삶을 살고있다고 자랑하던

그녀가 2013년 무릎팍 도사에서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바로 대장암을 앓고있고 이것이 인파선까지 전이됐다는 안타까운 소식...

비록 어렸을때 이지만 진실로 좋아했던 여배우의 투병소식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나의 눈빛을 위로하듯 그녀는 여전히 환히 웃는 모습으로

담담하게 본인의 투병소식을 전하였다.

방송말미에 그녀가 뱉은 한마디가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암은 죽음을 준비할수 있게 해주쟎아요!!

제가 만일 교통사고나 뇌출혈로 사망했다면 죽음마저 준비할수 없쟎아요!

그런면에서 저는 행복해요!!"

물론 그녀의 속마음은 아닐것이다.그러나 적어도 죽음앞에 초연해지려

했고 그리 노력했을 것이란 생각은 어렵사리 든다.

그이후로 그녀는 조용히 방송계에서 점차 자취를 감췄고 흔히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투병사실 조차 새까맣게 잊혀져갔다. 

 

그런데 그녀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아프디아픈 대장암에 폐암으로 고생하다 삶을 마감했다.

그녀의 생각보다 빠른 죽음에 황당함을 넘어 안타까움마저 느껴졌다.

나의 어린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되살아나면서 매혹적인 눈웃음과

가련한 눈물을 보여주던 영원한 연인의 갑작스런 작별이 늦가을의

낙엽과 더불어 쓸쓸함에 공허함을 더해줬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것같아 비통함과 안타까움이

가슴속에 절절히 흘러내렸다.

무릎팍이후 방송이나 인터넷에서도 투병사실을 전하지않으며 조용히 삶을

정리한 그녀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그녀의 명복을 두손모아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전하고 싶습니다.꼭!

“당신은 영원한 나의 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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