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시간

제목: 익숙한 것이 성숙한 것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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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5-08-14 ㅣ No.43

 

 제목: 익숙한 것이 성숙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복음서를 묵상해 보면 다음과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너무 익숙한 내용들이다. 너무 익숙해서 다 알아서 분심이 들때도 있다.

사실 어쩌면 즐겨보는 드라마나 연속극이 더 우리의 호기심과 여러 생각을 가지게 하는 흥미를 유발하는 지도 모른다. 왜 그럴까?


미사를 봉헌하다보면 다음과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다.

너무 익숙한 내용들이다. 너무 익숙해서 내자신이 의식하지 못한체 어떤 느낌없이 미사를 드리고 경문을 왼다고 해야 할까 그럴때가 있다. 아니 벌써?

사실 어쩌면 좋아하는 테니스나 좋아하는 신자나 가족들을 만나는 자리가 더 기대되고 행복한 시간인지 모른다.  왜 그럴까?


제자들이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반대한다. 그리고 싫어하고 배반하고 도망하고 .......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고 제자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나의 아주 익숙한 입장에서 바라본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예수님은 33살에 돌아가셨다. 그것은 아주 비참하고 치혹스럽고 고통스럽게!


그런 사실은 함께 생활해 가는 제자들에게 전혀 익숙할수 없는 현실인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 그러시면 안됩니다!”하고 예수님의 죽음을 막는다. 그러자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하고  예수께서는 꾸짖으신다.

이 대목을 묵상하면서 나는 얼마전 매우 큰 감동을 받았다. 베드로의 모습을 닮고 싶은 마음이다. 비록 사탄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그의 마음을 닮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적어도 이렇게 복음과 전례가 익숙해져 내 마음속에 그 젊디 젊은 우리 주님의죽음을 아무 생각없이 인정하는 내가 어색해졌던 마음이 생겼다.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습관은 익숙해져야 한다. 미사를 참여하고 전례에 참여하는 방식과 모양은 습관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내용! 바로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은 늘 새로워야 하며 늘 생생한 현존으로 다가와야 한다.

그분의 크신 사랑은 익숙해 질수 없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원체험의 고향을 향해 본능적으로 물살을 거슬러 계곡을 뛰어넘는 연어처럼 우리 영혼의 안에 잉태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열매를 성장시키며 낳기위해 늘 우리의 익숙함을 다시 일깨우고자 노력해야한다.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는 것보다, 자는 척하는 사람을 깨우는 것이 더 어렵다. 왜냐하면 자는 척하는 사람은 이미 교만이라는 익숙함의 잠을 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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