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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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6-01-16 ㅣ No.225

틈, 사이

-복효근-



잘 빚어진 찻잔을 들여다본다

수없이 실금이 가 있다

마르면서 굳어지면서 스스로 제 살을 조금씩 벌려

그 사이에 뜨거운 불김을 불어넣었으리라

얽히고 설킨 그 틈 사이에 바람이 드나들고

비로소 찻잔은 그 숨결로 살아있어

그 틈, 사이들이 실뿌리처럼 찻잔의 형상을 붙잡고 있는 게다

틈 사이가 고울수록 깨어져도 찻잔은 날을 세우지 않는다

생겨나면서 미리 제 몸에 새겨놓은 돌아갈 길,

그 보이지 않는 작은 틈, 사이가

찻물을 새지 않게 한단다

잘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 벽도

양생되면서 제 몸에 수 없는 실핏줄을 긋는다

그 미세한 틈, 사이가

차가운 눈바람과 비를 막아준다고 한다

진동과 충격을 견디는 힘이 거기서 나온단다

끊임없이 서로의 중심에 다가서지만

벌어진 틈, 사이 때문에 가슴 태우던 그대와 나

그 틈, 사이까지가 하나였음을 알겠구나

하나 되어 깊어진다는 것은

수많은 실금의 틈, 사이를 허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네 노여움의 불길과 내 슬픔의 눈물이 스며들 수 있게

서로의 속살에 실뿌리 깊숙이 내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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