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살아계신 하느님! 마르꼬 12,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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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7-06-06 ㅣ No.404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분은 죽은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이들의 하느님이다 너희는 크게 잘못생각하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모세가 타지 않는 불떨기안에서 말씀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부활의 의미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의 신앙안에서 "살아있다!"이라는 뜻은

 

 단순히 죽어있다와 반대되는 이세상의 "살아있다!"는 개념이 결코 아닙니다. 

 

부활을 소생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활은 전적인 하느님 구원의영역이며 우리가 기도해야할 기도 지향의 최고정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세상의 것만 생각하여 세속적인 지향으로 만 기도하고 우리의 목적인 부활이나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하는 넓고 깊은 지향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님 말씀처럼  우린 "성서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사실 모릅니다."

 

그러면서 오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파처럼 세상을 자신들의 잣대로 그리고 교회생활안에서도 세상의 삶으로 굳어진 선입관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살아계신 하느님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역사안에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관념적이 신이 아니라 인간역사안에서 구원의 역사를 펼치는 분으로서 그분은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씀 그리고 그 말씀을 모세의 떨기나무대목에서 말씀하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성경을 펴서 그대목을 확인하고 묵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정말 무관심하고 게으른 나 자신을 봅니다.

 

이미 그 내용을 다알고 그 역사는 구약의 먼 옛날 조상들의이야기처럼 치부합니다.

 

우린 성경안에서 성서의 인물과 그 역사안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성서의 내용을 그저 어렴푸시 알면서 다시 펴보지 않습니다. 게으름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한번 구약의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이 어떻게 하느님과 함께 살았는지?

 

그리고 모세가 어떻게 하느님을 만났는지 한번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안내를 받아가며 살아있는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봅시다.

 

살아있다고 하면서 찾아가지 않는다면 우린 죽은것입니다.

살아있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린 죽은 것입니다.

살아있다고 하면서 남을 미워한다면 나도 죽고 남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역사의 하느님입니다.

성경을 읽을때 언급되는 구약과 신약의 사건을  그 지문안에서만 보지 말고 실제로 그대목으로 찾아가서 다시 묵상할때 우린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버리고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분의 역사하심을 다시 묵상할때

우린 살아계신 하느님과 만나  또하나의 역사를 창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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