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추모시 : 혜화동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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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 [twinstars] 쪽지 캡슐

2009-02-18 ㅣ No.668

 

 

 

스스로를
혜화동 할아버지라고 부르신
그 마음 안에는
모든 이들을 무릎 가까이
불러들이고 싶은 당신의 자애와
자신을 한없이 비우고 낮춰
가난한 이들을 섬기려는 마음이 녹아있습니다

혜화동 할아버지

당신이 계셔서
저희는 참 따뜻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세상을 호령하는 철부지 아이라도 된 듯
무엇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서슬 퍼렇던 독재의 총부리도
재개발 지역 강제 철거반 어깨들도
불의와 부패도
음모와 비리도
당신의 한 말씀에 힘을 잃어갈 때
용솟음치던 뜨거운 희망을
아, 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가난한 순례자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고
뜨겁고 메마른 사막을 건네주는
한 마리 낙타였습니다

당신은 천근의 무게 때문에
더는 짊어질 수가 없는 율법을
어기고 달아난 죄인이 움켜 쥔
제단의 뿔이었습니다

시절 따라 세상도 변하고 인심도 변했지만
당신의 질그릇이 깨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마음 변치 않아

“사랑하고 사랑하라 그리고 화해하라”

그 말씀을 한 그릇의 따순 밥으로 받아 먹습니다
그 말씀을 한 사발의 정화수로 받아 마십니다

혜화동 할아버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무거운 옷 벗어놓고
하늘나라 오르시는 이 좋은 날

통회와 찬미의 기도를 향연기처럼 피워 올려
당신 가시는 길섶에
초롱불 밝히운 듯 길라잡이로 따르오니
안녕히 가십시오
편안히 쉬십시오.

 

 

서울 대교구 방화 3동 성당

김윤아 마리아막달레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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