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 찬미예수님!은 우리나라의 박해시대에 태어난 우리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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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5-01-04 ㅣ No.125

+ 찬미예수님!은 우리나라의 박해시대에 태어난 우리 인사말!


한국 교회가 창설 200주년을 기념하던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그의 입에서는 우리말로 “찬미예수”라는 인사말이 나왔다. 모두들 “와!”하는 환호가 터졌다. 교황이 정확한 발음으로 한국어로써 인사말을 해서인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찬미예수라는 인사말이 한국의 박해시대를 대표하는 자랑스런 신앙고백이며 교우간의 인사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교황은 우리나라의 곳곳을 두루 방문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때마다 그는 또렷한 발음으로 “찬미예수”라고 인사했다.

“찬미예수”는 “예수를 찬미합시다.(laudate Jesum)” 라는 문장을 줄인 독특한 표어의 느낌을 주는 인사말이다. 이말은 순수하게 우리나라의 박해시대에 신자들이 사용하던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자랑할 만한 인사말이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이 인사말로 자신들이 받들어 본받으며 찬양해야 할존재가 누구인지를 늘 일상의 순간안에서 확인해 나갔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들어와 이 인사말은 점차 생소해져갔다. 오히려 점점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잊어버렸고 그 틈으로 개신교가 이 인사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개신교 예배때 목사들이 더 많이 이 말을 자주 사용하며 신도들은 응답한다. 따라서 어떤 신자는 필자가 강론의 시작을 “찬미예수님”했더니 “신부님 그 인사말은 개신교 목사님들이 쓰는 용어아닙니까?”라고 까지 질문받은 적이 있다. 요즈음 로만칼라를 목사님이 하도 많이 하셔서 지난번 필자가 로만칼라를 하고 백화점을 가서 어떤 물건을 사는데 “목사님!”이라고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이젠 우리 한국 천주교회에서 참으로 뜻깊게 탄생되고 고백되어진 의미깊은 인사인 이 “찬미예수”라는 인사말까지 로만칼라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찬미예수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이 인사말의 깊은 뜻과 전통을 되살리는데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행사가 한몫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황은 이 인사말로 한국 땅에 침구하였고 우리 신자에게 인사하였다.

찬미예수라는 인사말은 사료를 통해서는 아마도 김대건 신부 이후 어느 시점에서 태어났다고 생각되어진다.


“우리는 우리 선교지방에서 아름답고 좋은 또 하나의 실천규범도 세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희 신부들이 교우를 만났을 때나 또는 기도실에서나 성무로 그들을 접견하게 되었을 때는 물론, 교우들끼리 만났을 때도 서로 ‘찬미예수’(조선어로 ‘예수그리스도를 찬미합시다’라는 말입니다.) ‘아멘’이라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렇게 하여 700일 한대사를 수월히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습관적으로 교우들은 외교인들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지만 저들은 귀는 있지만 듣지를 못하고 혀는 갖고 있기는 하나 대답을 못하지요. 저는 비단 저의 관할구역 뿐만 아니라 전체 지역에서 신자들이 좋은 실천의 문턱에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첫 번째 성직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칼레, 1862, 10. 미리내에서 보낸 서한)

위의 편지의 내용을 통해 알수 있듯이 찬미예수라는 인사말은 당시의 교규 직권자에 의해 정책적으로 시작된 신앙운동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조선 교회가 700일 한대사를 부여하면서 까지 이 인사말을 널리 전파한 이유는 바로 이 인사말을 통해 우리가 선포하고 생활에 중심으로 삼는 신앙의 대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 선언이 생활안에서의 습관 즉 덕의 경지에 까지 오르기를 바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인사말이 바로 박해 시대라는 삶의 자리에서 자라났다는 데 그 의미는 더 풍성해 진다.

필자가 더 주안점을 두는 것은 바로 이 운동이 신자들에서 부터의 운동이 아니라 위의 편지를 직접 인용하자면 “우리는 우리 선교지방에서 아름답고 좋은 또 하나의 실천규범도 세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희 신부들이 교우를 만났을 때나 또는 기도실에서나 성무로 그들을 접견하게 되었을 때는 물론, 교우들끼리 만났을 때도 서로 ‘찬미예수’(조선어로 ‘예수그리스도를 찬미합시다’라는 말입니다.) ‘아멘’이라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렇게 하여 700일 한대사를 수월히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습관적으로 교우들은 외교인들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즉 이 인사의 시작이 바로 아름답고 좋은 실천규범으로서 우리 사제들이 교우를 만나고 함께 기도하는 곳에서 행하는 사제들의 인사라는 점이다. 이 사제들은 아름다운 인사는 교우들이 이 인사를 외교인들에게까지 습관적으로 하는 인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당시의 조선조의 사상에 비추어 한대사 700일의 의미는 중요한 것이었다. 대사는 고해성사로 이미 사함을 받은 죄에 따른 잠벌을 사면시켜 주는 특전을 말한다. 잠벌은 보속할 죄벌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연옥에서 받게 될 잠시적인 벌이다. 전대사는 이 잠벌을 모두 면하게 해주는 사면행위를 뜻한다. 한대사는 지상에서 일정한 기간의 선행을 통해 삭감 받을 수 있는 잠벌의 제한적인 감면을 의미한다.

신자들은 기도와 선업을 통하여 대사를 얻을 수 있고 이 대사를 연옥영혼에게 양도할수 있다. 그리고 신자들은 이 대사를 연옥영혼 특히 아무도 기어해 주는 이가 없는 가장 버림을 받은 영혼을 위해 양보했다 .당시 조선 후기 만연했던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것이 풍수지리를 잘 써서 혹은 제사를 잘 지내야 된다는 식의관행과는 달리 신자들이 오히려 살아있는 자신들이 돌아가신 분들의 궁극적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선행을 실천하는 규범으로서 한대사 700일이 부여된 이 실천 규범으로서의 인사를 덕으로서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였다는 점! 신앙의 고백이며 예수를 삶의 중심에 모시려던 새로운 결의! 박해안에서도 굽히지 않는 신앙의 용덕이 움트는 찬가이다.

대사를 부여하는 일은 교구장 이상의 직책에 잇는 성직자만이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조선 교구장이었던 베르뇌 주교가 “찬미예수”라는 인사말을 결정했다는 말이 된다. 이 인사말의 탄생 과정은 칼레 신부의 편지에서 밝혀지고 있다.

주님 공현 축일을 맞아 2000년전 황금과 몰약과 유황을 봉헌한 의미와 동방박사의 이야기만하는 것이 식상해서 진정한 공현의 의미는 바로 우리가 동방박사가 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찬미예수라는 인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것을 지켜나가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것이 남의 것인줄 알게 되는 착각은 역사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찬미예수” “아멘!” 이 인사는 우리 한국교회의 커다란 보물이다. 사제들이 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신자들 서로간에 그리고 비신자들에게 우리의 신앙을 선포하는 가장 아름다운 인사이다. 이 부족한 강론을 준비하면서 조광교수님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많은 것을 사제로서 그리고 현대를 사는 신자로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제들의 불타는 모범 길라잡이 역할! 사제의 존재감을 느낍니다. 사제의 인사한마디가 이렇게 커다란 변화와 아름다운 실천 규범이 된다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자료를 보고 싶은 분은 칼레신부의 편지 모음이나 베르뢰 주교님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십시오.

참고로 베르뇌 주교님은 우리가 현행 사용하는 연도인 천주교 성교예규를 편찬하신 분이시며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의 토착화를 위해 노력하신 분이십시다.

찬미예수라는 인사를 통해 우리 선조가 받은 한대사는 바로 연옥영혼을 위한 연도의 또다른 형태라고 저는 주장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역사성을 알고 우리 사제들과 신자들이 찬미예수라는 인사를 더 많이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예비자들에게도 교회의 인사인 이 말의 역사성을 좀 알려 주셨으면 하는 바램에서 오늘 공현 대축일에 수녀원에서 긴 강론을 합니다.

여러분! 찬미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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