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가을의 잔상

인쇄

류진석 [ryu4337] 쪽지 캡슐

2014-10-14 ㅣ No.11324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관악산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불영암에도 가을이 들었다.

 오색창연한 낙엽들로 이쁘게 장식을 한 부처님의 양볼이

 수줍은 새악시처럼 홍조를 띄웠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10월초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오후의 따스한 햇빛과 노란 은행잎과

붉은 단풍으로 둘러싸인채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가운데에 중풍으로 불편해진 할머니에게 따스한 차한잔을

입으로 훅훅불며 건네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띄웠다.

"나도 저양반처럼 마누라한테 저렇게 할수 있을까??"

참으로 아름다운 구경거리를 뒤로하고 불영암 쪽문을 통해

아쉬운 하산길을 재촉했다.

무리했는지 중턱에 내려오니 무릎도 시리고 갈증도 느껴져

바위에 걸터앉아 물한모금 마시는데 60대는 족히 넘어보이는

아저씨가 지게에 20키로 쌀 5포대를 짊어진채 헉헉대며

걸어오다가 내옆에 지게를 잠시 세운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절에 배달가시나 봐요!!"

"아래 마트인데 워낙 큰 고객이다보니...."

"그러면 쌀만 배달하시는 것이 아닌가봐요??"

"야!각종 야채,과일등등 직원이 모두 3명이 출동했어요!!"

"헉!"

아저씨가 땀을 훔친뒤 지게를 짊어지고 발길을 재촉하려는데

20대로 보이는 총각이 헐레벌떡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사장님!사과 두박스를 짊어오다 삐끗해 그만 비탈길에 사과가

쑤서 박았는데요!어떡해요?"

"마트에가서 다시 가지고 와!임마!"

아저씨는 화기를 못참는지 단풍처럼 얼굴이 붉어져 씩씩거렸고

총각은 은행잎처럼 얼굴이 노래지더니 부리나케 달음박질쳤다.

"정말 먹고 살기 힘들다!"

탄식하듯 중얼거리며 바위에서 내려와 완만한 능선을 타고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흥얼거리면서 내려오는데

눈으로 봐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얼어붙듯 노래와 몸이

동시에 정지되버렸다.

10여명의 족히 넘어보이는 총각들이 삼성 지펠냉장고를 들고

아기 걸음걷듯 뒤뚱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헉!!:

10걸음도 채 걷지도 못하고 멈춰선 그들에게 물을 건네며

말을 걸었다.

"이게 웬 황당한 시츄에이션?"

"불영암에 냉장고 설치하러 갑니다!

아자씨 불영암까지 한참 남았나요??"

"응..응 아니..바로 저기만 올라가면되!"

"그래요!빨리 가자!"

말도안되는 거짓말을 한것이 미안하면서도 아들같은 놈들이

저렇게 힘들게 고생하며 사는것이 안쓰러워 그들이 혹시나

절망할까봐 나도 모르게 입에서 구라가 슬슬 터져나왔다.

낑낑대며 올라가는 그들을 보며 지금 나의 인생이 힘들다고

푸념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란 생각이 들었다.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그속에 고달픈 서민들의 삶이 어우러지고

그위에 낭만의 노래가 점철되는 오늘이 너무나 아름답다.

하산길을 재촉하면서 또다시 현실세계에 가까워지니 나도모르게

탄식이 또다시 터져나왔다.

"참 먹고 살기 힘들다!!!"

 

 

 



84 1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