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2001년 9월 주일 어린이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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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신부 [jpatrick] 쪽지 캡슐

2001-08-26 ㅣ No.290

 

연중 제 22주일(루가 14,1. 7-14.)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바리사이파 지도자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으셨어요. 유대인들은 평일에는 식사를 두 번 하다가 안식일에는 세 번 하는데, 안식일 오전 회당에서 예배를 가진 후 먹는 점심 식사가 가장 잘 차려진 식사였고, 보통 손님을 초대해서 잔치를 베풀었어요. 이 자리에 예수님을 초대한 것은 식사를 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과 율법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더 듣고자 한 것이지요.

 

그런데 정작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말씀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자리다툼에 더 열을 올리고 있었어요. 서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 가지 비유를 들어 그들의 태도를 야단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밀림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한 선교사가 원주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고 싶어서 그들 몇 명을 경비행기에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어요. 문명의 혜택을 보지 못한 원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위대함을 간접적으로 뽐내고 싶었던 것이었어요. 그런데 원주민들은 조금도 놀라거나 감동하는 표정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원주민은 "그런 것(하늘을 나는 것)은 곤충도 할 수 있는 겁니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어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해요. '내가 너보다 더 잘났으니까 내 말을 들어라!' 한다면 그 누구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셨던 것처럼, 우리도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나누도록 해요.

 

 

연중 제 23주일(루가 14,25-33.)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 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정말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져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데 여기서 '미워하다'라는 말의 뜻을 생각해 보아요. 예수님의 모국어인 히브리어나 아람어에는 비교급이란 것이 없데요. 그래서 엄마 아빠나 형제 자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예수님보다 '덜 사랑해야 한다'는 표현을 '미워하다'라고 표현한 것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가 조금 쉬워졌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만약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하고 세상의 다른 것, 예를 들면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 등을 더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끝까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망대를 지으려 할 때 먼저 망대를 완성할 만큼 충분한 비용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하신 것이에요. 시작만 하고 끝을 맺지 못한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가 IMF의 위기를 맞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시작만 하고 끝을 맺지 못했어요. 아파트나 공장을 짓기 위해 시작은 했는데, 끝을 맺을 때까지 충분한 비용을 준비하지 못해 중간에 포기하거나 망한 회사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여기저기 짓다만 집들이 많았어요. 이런 모든 것들이 충분한 준비나 다짐이 없이 일단 '하고 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에요.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일단 한 번 하고 보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한 번 시작했으면 끝까지 충실하도록 해야겠죠?

 

 

연중 제 24주일(루가 15,1-32.)

 

 

오늘 복음은 죄인 하나의 회개를 너무나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전해주고 있어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이야기가 있죠? 그러면 회개와 용서 중에서는 무엇이 먼저 일까요? 회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느님의 용서가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용서하시는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회개가 가능한 것인지? 아리송하죠? 신부님은 회개보다 용서가 먼저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회개가 가능하고 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집을 떠났던 작은 아들은 모든 재산을 다 써버리고 뒤늦게 후회하면서 아버지께 돌아왔어요. 그리고 무릎꿇고 용서를 빌었어요.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껴안아 주시고 용서해 주셨어요. 아버지는 작은 아들이 집을 떠난 뒤로 늘 마을 입구에서 언제나 아들이 돌아오려나 하며 기다리고 계셨어요. 바로 이런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작은 아들은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올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에요.

 

스페인에 아라곤이라는 왕이 있었어요. 그 왕도 신하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넓은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한 번은 신하들과 함께 보석상에 갔었어요. 보석들을 구경하고 나왔는데, 주인이 뒤따라 나와 아주 비싼 다이아몬드 하나가 없어졌다고 했어요. 그래서 왕은 신하들과 함께 모두 보석가게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소금을 가득 채운 항아리를 하나 가져오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신하들에게 그 소금 항아리에 주먹을 넣었다고 꺼내도록 했어요. 그렇게 한 후 항아리의 소금을 탁자 위에 쏟았더니 그 안에서 다이아몬드가 나왔어요. 이렇게 해서 아라곤 왕은 잘못을 저지른 신하가 스스로 죄를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에요.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루가 9,23-26.)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스스로 진리를 찾아 하느님께 나아간 선조들의 신앙 역사예요. 다른 나라들은 모두 선교사들이 와서 먼저 신앙의 진리를 가르쳐 주어서 믿음을 갖게 되었지만, 우리나라는 먼저 신앙의 진리를 발견한 여러 사람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진리를 깨우쳐 믿음을 갖게 되고, 그 후에 신부님과 주교님을 모셔온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어요. 게다가 100년 간의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죽음으로써 지켜온 자랑스런 역사도 갖고 있어요.

 

오늘은 이렇게 신앙을 지키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마저도 기꺼이 바친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믿음을 본받기 위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이에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온몸으로 실천한 분들을 기억하는 날이에요.

 

그분들의 순교와 희생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피를 흘리는 순교가 사라졌어요. 그래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또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숨 바쳐 신앙을 지켜온 선조들의 순교정신마저 잊어버려서는 안돼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피를 흘려 신앙을 증거하셨다면, 이제 우리는 땀을 흘려 그분들의 정신을 이어가야 해요. '땀의 순교'라는 것은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뜻해요. 우리 모두 자랑스런 순교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신앙생활을 하도록 다짐해요.

 

 

연중 제 26주일(루가 16,19-31.)

 

 

먹이를 찾던 물고기 두 마리가 먹음직해 보이는 지렁이를 발견했어요. 한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에게 말했어요. "저 지렁이가 보이지? 저건 낚싯바늘에 달려 있는 거야. 낚싯바늘은 낚싯줄 끝에 달려 있지. 그리고 낚싯줄은 낚싯대에 연결되어 있고, 그 낚싯대는 사람이 쥐고 있어. 우리가 저 지렁이를 삼키면, 우리 입이 바늘에 걸려 결국 프라이팬에 얹혀지는 신세가 되고 말 거야." 그러자 다른 물고기가 말했어요. "하하하! 어릴 때 할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바로 그 이야기구나. 나는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믿지 않아. 프라이팬에 얹혀졌다가 다시 물 속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밝혀준 이가 어디 있어? 자네가 저 지렁이를 먹지 않겠다면 내가 먹어 치우겠네."

 

지렁이를 먹은 물고기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결국 누군가의 식탁에서 맛있는 생선요리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다른 물고기의 말을 들었다면, 또 예전부터 할머니가 늘 들려주신 말씀을 들었다면 그 물고기는 죽지 않고 여전히 물 속에서 잘 살 수 있었을텐데…. 이미 지렁이를 먹은 다음에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겠죠.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도 무턱대고 지렁이를 먹은 물고기처럼 이 세상을 살았어요. 모세와 예언자의 말씀을 통해 가난한 이웃을 돕고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수없이 들었지만, 그 부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흥청망청 호화로운 생활을 했어요. 자기 집 대문간에서 한 거지가 비참하게 살다가 죽든 말든 상관없이 그렇게 살았어요. 결국 죽어서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때 뒤늦게 후회해도 이미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어요. 우리 어린이들은 오늘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잘 듣고 지금 그대로 실천하는 슬기로운 신앙인이 되리라고 신부님은 믿고 있어요.

 

<소년, 2001년 9월호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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