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추기경님의 하늘에서 온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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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 [h59777] 쪽지 캡슐

2010-09-05 ㅣ No.1212

 

 

 

여기가 낙원입니다

 

호주를 방문했을 때 우리 교민들이 들려준 이야기 중에 “여기가 지상낙원입니다”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브리스번과 시드니는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하늘, 땅, 바다, 공기가 아주 깨끗하고 맑고 푸르렀습니다. 그런데 교민들이 “여기가 낙원입니다”라고 말한 데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민들 말이 호주에서(뉴질랜드에서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존재는 어린이들이랍니다. 그 다음이 장애인, 노약자, 부녀자, 그 다음이 동물, 그리고 남자 이런 순서랍니다. 남자가 맨 끝에 온 것은 남자를 천히 생각해서가 아니라 남자는 앞선 이 모든 사람들, 심지어 동물까지도 아끼고 보호해야 할 책임을 누구보다 먼저 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듣고 감동했습니다. 또 응급환자나 교통사고로 다친 이가 병원에 실려 오면 우선 치료부터 하고 돈은 그 다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을 우선시하고 어린이를 비롯해 약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가치관이 한 사회를 아름답게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저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비춰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같은 가치관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사람이건 동물이건 생명을 아끼지 않는 나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 응급환자에 대한 병원 대처, 외국인 노동자 인권유린 등 모든 것이 아직도 부족합니다.

 

언젠가 네팔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이 명동성당에서 여러 날 농성하며 자기들을 고용한 한국 기업들로부터 겪은 비인간적 학대에 대해 항의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분노가 일어 청와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런 비인간적인 외국인 대우는 정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체면도 실추시키고, 세계화를 부르짖는 대통령 외침과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세계화를 하려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부터 인간답게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문제의 근본은 언제부턴가 우리가 수전노처럼 돈만 아는 사람이 된 데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해 돈을 벌었지만, 돈이 좀 있다하여 없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같은 태도를 고치지 않고는 21세기 도전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한국인의 장점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끈기와 저력이 있습니다. 그 어떤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시련을 극복하고 당당히 일어섭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세계화 시대의 일원이 되고,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남을 존중하고 위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다운 인간입니다.

 

먼저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적으로 말하면 회개이고, 인간적 차원으로는 정직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 말씀 모음집,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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