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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레지오의 기도문 3.묵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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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4-11-04 ㅣ No.72

 

교본 해설 47


제22장 레지오의 기도문


묵주기도를 바치는 방법


ꡐ묵주기도를 바치는 방법쯤은 당연히 알아야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하는 것이 아닌가?ꡑ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묵주기도 바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고, 생활화되어 있다. 성호경을 하고 사도신경을 하고 주님 기도를 하고 성모송을 하고… 하지만 이런 외적인 방법과 순서를 아는 것 이외에 우리가 꼭 염두에 두어야 할 내적인 사항들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이것을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얼마 전에 청소년들과 프랑스 성지를 순례할 기회가 있었다. ꡐ기적의 메달ꡑ 성당을 돌아보고 파리 외방선교회를 방문한 후 우리 일행은 루르드행 기차를 탔다.

루르드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동네였지만 약 100년 전, 그 고장에서 가장 가난한 집의 딸인 벨라뎃다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성지가 되었다.

성모님께서는 죄인들의 회개와 세상의 평화, 가정의 성화, 그리고 사제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많이 봉헌할 것을 명하셨고, 당신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믿게 하시려고 동굴을 발현과 기적의 장소로 정하여 그곳에서 목욕을 하거나 물을 마시면 치유되게 하셨다. 지금 그 동굴에는 환자들이 버리고 간 목발이 쌓여있고, 기적의 체험사례들이 수없이 많이 전해진다. 루르드에는 세계에서 몰려든 환자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이 있을 정도이다.

또 대단한 기적은 성모님께서 메시지의 전달자로 초대하신 어린 소녀 성 벨라뎃다 수녀님의 시신은 오늘날까지 썩지 않는다는 것이다. 100년이 지났는데도 지금 사망한 사람처럼 생생한 피부를 유지하고 있다니, 그것은 성모님의 발현과 말씀이 지금도 우리에게 전달되어야 함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매일 저녁 수만 명이 성모님의 지향에 따라 촛불을 들고 루르드를 돌며 함께 기도한다. 마치 군대의 수많은 군단, 뗏세라의 그 그림처럼!

우리를 인도하시던 한 수녀님이 묵주기도의 방법에 대해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너무 감명 깊었다.

발현하신 성모님은 루르드의 동굴에서 성 벨라뎃다와 함께 매일 묵주기도하기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벨라뎃다는 행복하게도 성모님과 묵주기도를 함께 하는 은총을 입게 되었다.

성호경을 하고 사도신경을 하고 주님의 기도를 했다. 그리고 성모송을 할 차례! 그런데 성모님의 목소리가 뚝 그쳤다. 어! 이상하다. 성모님의 목소리가 들리지가 않아! 살며시 성모님의 얼굴을 살핀 벨라뎃다! 성모님은 아무 말도 없이 사랑 어린 눈빛으로 성녀를 빤히 보고 계셨다. 순간 얼굴이 발개진 벨라뎃다는 질문하였다. ꡒ성모님! 왜 다른 기도문은 함께 하시고 성모송할 때는 암송하지 않으세요? 왜 성모송할 때는 저를 바라보시지요?ꡓ

그러자 성모님은 대견하다는 듯 미소를 띠시고 말씀하셨다.

ꡒ어떻게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비천한 내가 스스로 나를 칭송하는 기도문을 나의 입술로 기도할 수 있겠느냐?ꡓ

벨라뎃다는 또 질문하였다. ꡒ그러면 성모님, 왜 하늘을 바라보시다가 성모송을 할 때면 저를 바라보십니까?ꡓ

성모님이 또 대답하셨다. ꡒ천주의 모친인 나는 십자가상의 나의 아들 성자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하느님의 자녀인 너희 모두를 나의 자녀로 선물받았다. 따라서 영원한 모후인 나는 어머니를 부르는 자녀들의 목소리에 당연히 귀 기울이게 된단다. 아기가 엄마를 부르면 엄마는 모든 것을 놓고 달려가 아이를 품에 안듯이 어머니로서 나의 마음은 더 깊고 넓단다! 너희가 묵주기도를 통해 부족하지만 나와 나의 아들 예수의 삶을 묵상하고 함께 환희와 고통과 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니 나 또한 너희 생애에 필요한 은총을 하느님께 기도하고, 너희가 지금 지고 있는 십자가를 함께 느끼고 있단다! 나의 아들 예수를 향한 마음과 너희를 향한 마음은 같단다.ꡓ


그렇다! 묵주기도는 마치 가위의 기도와 같다. 젓가락의 기도가 아니다. 가위는 칼날이 서로 엇갈려서 물건을 자르는 기능을 수행한다. 묵주기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성모님의 생애를 묵상하고 관상하고 동시에 성모님은 우리의 삶을 묵상하고 관상하는 교차된 방식으로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젓가락과 같은 묵주기도도 있다. 젓가락은 반찬을 집기 위해 두 짝이 협력하고, 젓가락질을 많이 하면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즉 자기의 지향을 이루기 위해 성모님의 협력을 받아 줄기차게 기도문을 외우면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식의 기도를 말한다.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 형태인 기도를 하여야 한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성모님의 마음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입장에서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우리 마음이 성모님과 예수님의 마음처럼 변화되어 동감(動感)되는 교감(交感)의 작용이 바로 묵주기도의 내적 원리의 핵심이며 주안점이다.

이런 교감의 횟수가 많아지고 깊이가 깊어지면 결국 성모님의 마음과 같아지고 성모님의 사랑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동감(同感)의 경지에까지 오르게 된다. 더 쉽게 말해서 아기가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고민하지 않고 엄마의 품을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엄마를 부르게 된다. 엄마가 멀리 보이면 아기는 엄마의 목소리와 모습에 집중하며 엄마를 연거푸 부르고, 엄마품에 안기며 더 큰 목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엄마와 자식과의 관계는 어떤 과학적 원칙과 공식이 성립되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젖어드는 어머니의 품이라는 사랑의 원리만 있을 뿐이다. 그저 한없이 깊고 따스하고 넓은 마음과 온기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묵주기도는 묵주알을 단순히 반복적으로 돌리는 기도가 아니라 어머니의 품에 젖어드는 느낌의 기도이며, 머리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기도이며, 반복하는 기도가 아니라 감탄하는 기도이며, 함께할 힘을 모으는 협력의 기도이기보다 품에서 서로를 느끼는, 마주보는 포옹의 기도이다.


따라서 레지오 마리애의 묵주기도는 회합시에 지향을 두지 않는다. 우리에게 잘못된 습관이 있다면 묵주기도하며 단마다의 신비를 묵상하는데, 성모님의 마음에 들어가려고 노력하기보다 반복적으로 많이 바침으로써 나의 지향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바람으로 나의 지향만을 염두에 둔 일방적 주문식인 기복적 기도를 바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기도는 ꡐ하느님과의 대화ꡑ라는 대원칙과도 어긋난다.

이런 식의 묵주기도는 부활의 신비를 묵상할 때도 자신의 기도지향과 자신의 십자가만을 묵상하여 부활의 신비 안에서 자신의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는 동상이몽(同床異夢)식의 잘못된 기도를 봉헌하는 것이다.

묵주기도는 우리가 성모님의 생애와 마음을 묵상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성모님이 우리를 위해 더 전구하시고 깊고 그윽한 그분의 성심으로 우리의 삶을 더 묵상하고 걱정해주시는 아주 값진 시간이다.

우리가 묵주기도 시간에 성모님께 큰 기도를 바쳐서 보람있고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교차된 은총으로 우리가 성장하고 행복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묵주기도는 바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성모님을 나의 진정한 어머니로 얻는 ꡐ얻음의 기도ꡑ이며 ꡐ교감ꡑ(交感)의 기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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